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동자 Feb 18. 2020

건강한 무의식을 심어줘야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무의식의 사전적 정의 : 각성되지 않은 심적 상태,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이 없는 상태

무의식은 사전적 정의에서 보여주듯이 의식하지 않은 상태나 혹은 행동에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대뇌가 기억하는 게 아닌, 몸이 기억하는 것이 무의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저절로 행동으로 나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를 했다.’라고 표현한다. 무의식이 발현되는 부분을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들자면 습관이다. 습관은 모방과 반복적인 행동을 통하여 몸에 익고, 그것이 무의식 영역에 저장되어 의식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절로 발현이 된다. 습관은 고치기가 정말 어렵듯이, 무의식에 저장된 부분은 정말 극복해내기 힘들고 오랜 시간 동안 의식적인 노력과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무의식을 극복하기 힘든 만큼, 그만큼 평생을 갈 강력한 기억을 몸에 심어두는 것이기도 하다. 옛 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 무의식에 심어진 습관이 평생을 갈 만큼 강력하게 각인된다는 것이다. 평생을 가져갈 좋은 습관이나 무의식을 어린 시절에 형성해 놓는다면 자라나면서 건강하고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어디까지 기억나냐고 물어보면 보통 7세 이후부터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그 이전 시절까지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그렇게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은 인간의 일생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다.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어린 시절엔 모든 경험들이 무의식에 저장된다. 특히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7세 이전의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낀 건 무의식 영역에 저장되어, 이후의 사고, 가치관, 습관적인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하여 취학 전의 아이들에겐 무의식을 건강하게 심어주기 위해 주변 환경을 건강하게 조성해 줘야 한다. 특정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무의식에 저장되면, 후에 아이들이 그 존재에 대해 기피하거나 공포스러워하는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주변 환경을 건강하게 조성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름답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채워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취학 전 아동의 발달에서 언급되는 핵심 키워드들은 대부분 무의식과 연관관계가 있다. 반복, 습관, 신뢰, 편식, 편견, 호감과 비호감 등등......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무의식을 바람직하게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나는 5~6살에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다. 집에 있던 전자피아노를 두들기며 소리가 나는 것에 즐거워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멜로디를 건반으로 따라 치는 것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걸 즐거워하던 나를 보고 부모님은 그 능력을 그냥 두기엔 아까우셨는지 내게 피아노 학원을 데리고 가셔서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근데 나는 소리를 듣고 피아노로 옮겨 치는 걸 좋아했지, 이해도 못하는 악보와 기호를 보고 피아노 건반을 눌러야 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 첫 학원과 배움이란 존재는 힘들고 하기 싫고 짜증 나고 엄마가 시키니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각인된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내가 학원은 다니는데 피아노 실력은 늘지 않고, 진도도 못 나가니 계속 내게 닦달을 하셨다. 학원에서도, 집안에서도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아무도 지지해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내게 피아노와 배움에 대한 이미지는 힘들고 하기 싫고 짜증 나고 엄마가 시키니까 해야만 하는 것으로 무의식 속에 단단히 새겨진다. 그 무의식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뭔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몸에서부터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나는 엄청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지만 배움의 문턱까지 가면 몸에서 그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려서, 내가 즐거워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이 악물고 버텨가며 내가 배우고자 하는 걸 억지로 쑤셔 넣는 듯한 느낌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배움에 대한 이미지가 불쾌함으로 각인된 어린 시절로 인해 아직까지 뭔가를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마 내가 어린 시절 첫 배움에 대한 이미지가 즐겁고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는 걸로 각인이 되었다면, 나는 아마도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몸에서부터 즐거움이 샘솟아 오르고 배우는 과정을 재밌고 행복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렇듯 어린 시절에 형성된 무의식은 평생의 습관과 가치관과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 시기에 빨리 공부를 시켜서 그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유년시절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근데 기억에 없다고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는 시절이 훨씬 더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기억에 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절의 아이는 올바른 습관과 가치관을 무의식 속에 각인시키기 쉽다. 이때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은 즐거운 순간이라는 무의식을 심어줘야 하고, 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아이가 기억이 없어서 아직 공부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인데, 일찍 공부를 시키면 공부나 배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무의식에 각인될 수 있다. 이러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 공부를 불쾌한 것으로 여기고 의무감에 마지못해 하는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기억에 없는 시기는 이처럼 정말 중요하다. 이 시기에 아이에게 무의식을 건강하게 형성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없는 시기라고, "애들 어차피 그때 기억도 못하니까" 하고 그 시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그 시절에 아이에게 정말 행복한 기억들로 채워줘서 '아 세상은 정말 재밌고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좋은 이미지를 아이의 무의식에 잘 심어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왼손잡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