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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Mar 01. 2020

남자아이가 머리 자르기 싫어하는 이유

남자아이라고 꼭 머리를 짧게 잘라야 될까?

어린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머리를 자르는 일이다. 머리를 자르자고 했을 때 좋아하는 아이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맛있는 걸로 유혹해보기도 하고, “너 이번에 머리 자르면 장난감 사줄게”하고 조건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잘 어르고 달래서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히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들이 아주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는 아들을 두고, 부모나 미용사는 사탕을 물려주거나, 딸랑이 장난감을 흔들면서 아이를 달랜다. 그래도 아들은 원하는 게 그게 아니라는 듯이 계속 난리법석을 피운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통을 치르고 나면, 부모도 아들도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다.

이렇게 아들은 아들대로 머리 자르기 싫어서 난리를 피우고, 부모는 부모대로 왜 울고불고 말썽이냐며 신경질 내고, 그렇게 서로 힘든 걸 왜 하는 건가 싶다. 안 하면 좋을 텐데, 뭐 하러 서로 감정 상하면서 생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자지러지게 우는데 도대체 왜 자르는 걸까? 안 자르면 안 되는 걸까? 도대체 왜 아들만 머리를 이렇게 짧게 잘라야 되는지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어린 아들을 키우는 부모님들한테 아들의 머리를 왜 자르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대부분은 “이유가 어딨나요. 남자애니까 당연히 자르는 거죠” 하고 답하신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이유 없이, 그냥, 당연하게, 아들의 머리를 잘라 왔던 것이다. 그나마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보신 부모님들은 이렇게 대답하시기도 한다.

“머리가 길어지면 눈도 찌르고, 거슬리고 불편해서요”

맞는 얘기다. 머리가 길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거슬리고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한 번 생각해보자. 딸도 머리가 자라서 불편해 보이면 머리를 자르러 가는가? 그렇다 해도 남자아이처럼 아주 짧게 자르는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딸아이가 머리가 길어져서 불편해 보이면 묶어주거나 머리핀을 꽂아주면서 머리를 정리해 준다. 아들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대한다.

그리고 아들의 머리를 자르는 또 다른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도 있다.

“사람들이 여자아이로 오해할 수도 있고, 친구들이 놀릴 수도 있잖아요”

아마 이게 가장 걱정되는 고민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건 오해하고 놀리는 사람의 문제다. 그들에게 머리가 긴 남자아이라는 사실을 잘 알려주면 되는 거지, 그렇다고 아들이 머리를 잘라야 할 이유는 없다. 오해하거나 놀리는 사람의 잘못인데, 왜 놀림받는 아이를 탓하고 그 아이가 머리를 자르도록 강요하는 걸까? 이건 놀림받은 아이에게 가해지는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한테 잘못 알려진 소문이 있다. ‘남자아이가 머리가 길면 성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하는 게 그것이다. 근데 과연 그럴까? 남자들도 머리가 길던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엔 남자들이 전부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나? ‘남자아이가 머리가 길면 성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는 소문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성 정체성은 그런 외형적인 걸로 바뀌지 않는다. 아이가 치마를 입든, 화장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기가 남자라는 것만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머리를 자르지 않는 건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다. 아이의 몸을 존중해 주는 것이고, 아이의 의지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몸이 온전하고 자연스러운 걸 원한다. 아이들의 몸을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다듬으려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유아들한테는 머리 자르는 게 상당히 기분 나쁘고 힘든 과정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몸을 붙잡고 꽁꽁 싸매고, 낯선 공간에서 낯선 어른이 자기 몸을 아무런 허락도 없이 만지고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병원에서 수술받는 느낌과 같다.(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외과의사가 이발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잘린 머리가 얼굴이랑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따갑고 아프다. 이게 큰 아이나 어른들 입장에서는 잠깐 따갑고 말겠지만, 유아들한테는 상당한 통증이다. 이렇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무섭고, 불편하고, 따갑고 아픈 걸 오랜 시간 동안 견뎌내야 하는, 아이한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만 해도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이도 자기가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자기가 존중받은 걸 바탕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걸 배운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내가 만났던 머리 긴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공감능력이 탁월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직접 만난 아이는 아니지만, 하나의 예를 들어보려고 한다. tvN 채널에서 방영하는 "나의 첫 사회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아론이라는 머리가 긴 남자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가 다른 사람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크고, 배려심이 넘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아론이의 부모님은, 아론이가 머리를 자르고 싶지 않다고, 엉덩이에 닿을 만큼 길러보고 싶다고 말한 걸 존중해주고 지지해주신다. 아론이 부모님의 아론이의 몸과 아론이의 의지를 존중해주시는 양육방식에 좋은 영향을 받아서, 아론이가 그렇게 이타적이고 배려심이 깊은 아이로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N 나의 첫 사회생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황아론 군)

이미지 출처 - tvN


실제로 아들을 키우는 몇몇 부모님들은, 아이가 머리를 자르기 힘들어해서 '꼭 잘라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근데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쉽사리 아들의 머리를 길러주기 어려워한다고 한다. 놀림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가 밖에서 놀림을 받고 오더라도, 부모가 그 아이를 위로해주고 아이의 편이 되어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들이 놀림을 받고 왔을 때, 그걸 ‘아들이 머리가 길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여기면 아이를 탓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해서 아들의 머리를 자른다 하면, 앞으로 밖에서 놀림받는 일은 없을 수 있겠지만, 아들은 자기가 놀림을 받고 왔을 때 부모가 내 편을 들지 않고 머리가 긴 나를 탓하며 머리를 잘랐다는 기억에 부모에게 상처를 받을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밖에서 놀림을 받고 오더라도 부모가 나의 편이 되어 준다면, 아이는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여기고, 기죽지 않고 세상을 당당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 아들이 놀림받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 없이, 설사 아들이 놀림을 받고 왔다 하더라도, 놀림을 받고 온 아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아이의 편에 서준다면 아이가 머리가 길어서 생겨난 불미스러운 일로 상처 받거나 위축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남자아이가 머리가 길 때 우려되는 부분과는 반대로, 남자아이가 머리가 길면 정말 좋은 점들이 있다.

첫 번째로는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머리가 길면 머리 감기고 말리고 빗어주고 묶어주느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렇게 해주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아이의 머리가 길면 짧을 때보다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근데 아이는 그렇게 부모의 손길이 많이 가면 갈수록 긴밀한 신체 접촉을 통해 서로 애착관계가 상당히 깊어진다. 특히나 머리를 자극해주는 건 안정감을 주는 도파민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아이가 편안함을 가지고 부모한테 몸을 의지하게 된다. 애착이 강해지면 그만큼 부모와 아이 사이에 친밀감도 높아지고 상호 신뢰감도 공고해진다. 아침저녁마다 머리를 만져주는 게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향후의 육아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머리가 긴 딸을 키우는 보통의 엄마들은 매일 딸의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고 빗어주고 묶어주면서 엄마와 딸 사이의 애착관계를 단단히 다져 나간다. 남자아이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줘야 키우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실제로 조선시대엔 남자아이들도 머리를 빗어주고 땋아주면서 서로의 신뢰관계를 다져나갔다.

두 번째로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몸을 더 움직이고 감각을 더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머리가 길어져서 눈앞을 가리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긴다. 아니면 목을 흔들어서 머리를 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머리가 길면 저절로 손이 가고 자주 만져주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몸을 더 움직여주게 되고, 두피와 손가락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이렇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목을 흔들어 머리를 넘기면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게 아이 입장에서는 불편한 게 아니라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는 시간인 것이다.

세 번째는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사진에 나온 아이는 남자아이고 둘이 동일인물이다. 왼 편의 사진은 머리를 자르기 전, 오른 편의 사진은 머리를 자르고 난 후의 사진이다. 남자아이도 머리가 길면 짧을 때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반대로 머리가 긴 여자아이가 머리를 짧게 깎는다고 생각해보면 어떤 모습일까?



남자아이라고 꼭 머리를 잘라줘야 할 이유도 없고, 자연스러운 몸이 아이한테는 가장 좋은 신체적 성장환경이다. 그러니 앞으로 아들이 머리 자르기 싫어한다고 한숨 푹 쉬지 말고, 앞으로 최소 3년간 이발소나 미용실을 데려가지 말아 보는 게 어떨까? 머리를 자르면서 치르는 그 전쟁통을 겪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최소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게 좋다.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기르면 더 좋다) 그렇게 3년 정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게 하면, 남자아이도 머리가 허리에 닿을 만큼 자랄 것이고, 자기도 긴 머리에 잘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들과 부모 사이의 애착관계도 예전보다 더 깊고 더 단단히 다져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나중에 더욱 열린 마음과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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