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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Feb 15. 2020

엄마! 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어?

심심한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

방학이나 쉬는 날이 되면 부모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있다.

"심심해! 재밌는 거 없어?"

그러면 보통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놀아주다가 뻗어버리거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시키거나, 유튜브를 보여주거나, 아이들이 재밌어할 만한 놀이동산이나 공원을 나가곤 한다. 심심하면 공부라도 해 하면서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도 있다. 아마도 아이가 심심하다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줄지 몰라서 아이가 심심하게 보내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그래서 아이가 심심해하지 않기 위해, 혹은 타임 킬링을 하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뭐라도 시키는 것일 것이다.


근데 과연 심심함이 안 좋기만 한 것일까? 시간을 버리기만 하는 것일까? 심심함은 다르게 표현하면 평온함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고, 딱히 재밌는 것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다. 요즘엔 인생 노잼 시기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인생 노잼 시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평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 한참 직장생활이나 경제생활로 힘들어하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심심하다, 인생 노잼 시기다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중반에 직장생활이나 경제력이 어느 정도 안정권으로 접어들어서 예전만큼 바쁘거나 정신없지는 않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겨서 일상이 큰 기복 없이 평온해질 때 인생 노잼 시기라는 말을 한다. 누구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촉박한 삶 속에서 여유를 찾고 싶고, 좀 쉬었다 가고 싶은 생각을 누구나 했겠지만, 막상 삶이 안정되고 평온함이 찾아왔을 때 심심함을 느끼고 뭔가 재밌는 걸 찾고 싶어 한다.


심심한 시간은 평온한 시간이다. 여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교우관계와 학업으로 자기의 에너지를 많이 써서 배터리가 절반 정도 남아있는 상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심심하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미취학 아동도, 몸이 성장하고 뛰어놀고 움직이고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는 지치고 휴식을 필요로 한다. 이런 아이들이 모처럼만에 주어진 주말이나 공휴일이나 방학의 평온한 시간이 주어지면 충분히 쉬어 줘야 한다. 그 시간이 비록 빈둥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도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다. 심심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시간을 쓰는 데 있어서 타임 킬링을 용납하지 못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심심한 시간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임과 동시에, 창의력이 솟아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딱히 할 것도 없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스스로 재밌는 걸 만들어내는 힘이 생겨난다. 심심한 시간도 어느 정도여야 휴식과 재충전이 의미가 있지, 심심한 시간이 마냥 길어지기만 한다면 계속 성장하고 에너지가 샘 솟아오르는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에너지가 다시 채워진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재밌는 걸 찾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남은 심심한 시간 속에서 내면의 창의력이 발휘되어 기상천외한 작품이나 놀이들을 창조해낸다. 심심할 틈이 없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놀아주거나 재밌는 걸 제공해주기만 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시간을 재밌게 보내는 능력을 키우기 어려워진다. 심심한 시간에 심심하지 않게 계속 무언가를 제공해준 부모들의 아이는 심심한 시간을 못 버텨하고 게임이나 폭력적인 영상 등 자극적인 컨텐츠들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심한 시간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서 재밌고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어 본 아이들은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줄 아는 능력을 키워 왔으니 굳이 자극적인 컨텐츠를 접하며 시간을 때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심함은 동전의 뒷 면과 같은 존재이다. 재미나 바쁨이 동전의 앞 면이라면 심심함은 동전의 뒷 면이다. 심심한 시간 속에서 휴식과 재충전이 일어나고, 여분의 심심한 시간을 재밌게 보낼 창의적인 생각들이 생겨난다. 근데 이미 심심한 시간을 못 버텨하는 아이라면, 심심한 시간을 마냥 혼자서 보내게 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엔 심심한 시간이 100이라면 100을 모두 부모가 채워주려고 생각하지 말고, 100 중에 50은 부모가 채워주고 나머지 50은 스스로 심심한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 심심한 시간을 창의적으로 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주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쓸지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부모가 운동, 악기 연주, 독서, 뜨개질, 요리 등 자기의 취미활동이나 재주를 일상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게 아이들이 심심한 시간을 스스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데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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