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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Feb 15. 2020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따뜻하고 덕망 높은 어른을 아이의 곁에

나는 어린 시절에 상당히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셨는데 내가 3살 때쯤에 사업이 망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래서 집도 절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그때 우리 가족을 받아주신 분이 계시다. 엄마의 언니, 이모님네 가족이었다. 그때 이모부께서도 개인사업을 하시느라 바쁘시고, 이모도 회사에 다니시면서 나보다 5살 많은 초등학생 형을 키우고 계셨다. 나보다 5살 많은 사촌 형도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서 한참 학교생활에 적응해가는 시기였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모, 이모부, 사촌 형은 우리 가족이 맘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이모가 사시던 집의 방 한 칸을 쓸 수 있게 흔쾌히 내어다 주셨다.


엄마는 빚을 갚기 위해 늦은 밤까지 직장생활을 하셨고, 아빠는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셨다. 나는 어디에도 맡겨질 곳이 없었다. 이모는 그런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의 투정을 다 받아주시고, 나를 친자식처럼 돌봐주셨다. 사촌 형도 갑작스레 들어와서 귀찮게 하고 말썽 부리는 내가 짜증 날 만도 했겠지만, 크게 나한테 해코지를 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줬고, 자기 용돈을 들여 먹을 것도 사다 주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전기와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모부는 내가 전기와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도록 실제로 전구를 가지고 실험하는 걸 보여주시기도 했고 내가 질문하는 것에 재밌게 대답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지극정성을 받으며 7살까지 이모네 댁에서 살게 되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우리 가족은 이모 댁의 근처에 있는 전세방으로 독립해 나간다. 그렇게 이모네에서 4년을 얹혀살았는데도, 이모 이모부 사촌 형은 거기에 싫은 내색 한 번 하시지 않고,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4년을 살고 우리 가족은 독립해 나갔긴 하지만, 이모네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이모네와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때 동안 심심하면 이모네 놀러 가서 사촌 형하고 놀아달라고 하고, 사촌 형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나 컴퓨터를 만지다가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말에 자고 가는 일도 흔했다. 예고 없이 찾아가도 항상 내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시던 이모님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까지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이모네에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모와 이모부 사촌 형한테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7년 간의 시간 동안 이모네 가족과 한 가족처럼 살아오다가,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우리 가족은 원래 살던 구로의 전셋집을 떠나 멀리 용인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가게 되었다. 동시에 이모네 가족 하고도 거리가 멀어져서 자주 왕래하기 어려워졌다.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사시긴 했지만, 사실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좀 인색한 면이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지신 분이었기 때문에, 자식인 나의 입장에서는 냉철하면서 쌀쌀맞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냉철함은 직장과 사회생활에서는 일을 잘하게 하는 플러스 요인이지만, 가정 내에서는 집안 분위기를 쌀쌀맞게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격려와 공감보다 평가와 계산이 익숙해져 있었다. 이렇게 쌀쌀맞은 가정에서 자라서 쌀쌀맞은 성격을 배운 나를, 학창 시절 또래들은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난 부모님을 인간으로서는 존경하지만 솔직히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자식을 잘 키우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뭐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는다. 부모님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셨을 테고, 그 시대에는 미리 준비하고 부모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아마 나와 비슷한 세대의 부모님도 대다수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만이 나를 키워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의 지분이 50% 이상은 되겠지만, 나머지 30~40% 정도 되는 지분은 이모네 가족이라 생각한다. 냉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오느라 위로와 공감보단 평가와 계산에 더 익숙했던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타인에게 깊이 공감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건, 유년 시절에 보고 자랐던 이모네 가족들의 모습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게 베푸시던 모습을 자연스레 본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도, 부모역할까지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부모가 되기 전에 미리 아이를 잘 키우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할 여력이 없다면,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주변에 따뜻하고 덕망 높은 어른을 아이의 가까이에 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부모로부터 채우지 못한 부분을 따뜻하고 덕망 있는 어른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엔 부모의 모습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본받고 배우며 살았다. 부모가 아이를 잘 못 키운다면 동네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근데 현대사회에서는 마을은 물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니, 결국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아이가 보고 배울 만한 사람이 부모밖에 없고, 아이를 부모의 힘만으로 잘 키워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대사회에서 부모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거나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아이의 주변에 따뜻하고 덕망 높은 어른을 두고 자주 교류를 하는 것이 아이를 바르게 자라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한테 그런 어른의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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