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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Dec 29. 2018

수필가 진화 이경희의 수필 DJ

20세기 최고의 수필,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빛이라는 말을 찾기 전에 이미 빛이 있었다


진화 이경희


헬렌 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나친 유명세 탓에 그녀의 삶의 이야기에 대해 간추린 내용을 알고 있을 뿐 뛰어난 작가인 그녀의 글을 자세히 읽어본 사람이 많지 많다. 그동안 어린이나 청소년이 읽기 위한 헬렌 켈러의 위인전이 나왔으나 주로 줄거리 위주로 발췌, 압축된 책이 허다했다. 정작 그녀의 보석 같이 빛나는 언어와 유려한 문장을 꼼꼼하게 번역한 글을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최근에 발간된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2018, 헬렌 켈러 지음, 박에스더 옮김, 도서출판 사우)을 발견했다. 이 책에는 헬렌 켈러가 23세에 쓴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와 53세에 쓴 명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 담겨있다.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에세이를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했다.


손으로 보고 손으로 들은 풍요로운 세상

글을 깨친 이후로 평생 저술에 집중한 쓴 헬렌 켈러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그녀의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들 수 있다. 그녀의 자서전은 전기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며 레드클리프대학교 2학년 때 영작문 교수 찰스 타운센트 코플런드의 권유를 받고 쓴 글이다. 여기에 앤 설리번에 대한 전기 <나의 스승 설리번(Teacher: Anne Sullivan Story)>을 더해서 읽으면 좀 더 입체적으로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가 있다.


헬렌 켈러의 책을 번역하며 처음에는 그녀의 시청각 묘사가 과하다고 예단했던 박에스더는 ‘손으로 보고 손으로 들은 풍요로운 세상’이라는 옮긴이의 말에서 고백했다. ‘눈을 뜨고 본다고 해서, 귀로 듣는다고 해서, 입술을 움직여 말한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그녀보다 더 정확한 것을 많은 것을, 나아가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까지도 꿰뚫어보며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손으로 보고 손으로 들은 사람이 손으로 적은 글이기에 한 자 한자 더욱 정성들여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줄거리만 파악하고 덮을 책이 아니다. 풍성하고 의미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 시력과 청력을 잃었기에 더욱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거든 헬렌 켈러는 사람, 동물, 사물, 풍경, 사건, 무엇 하나 그냥 넘기는 법 없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묘사한다. 세밀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사라진 감각 대신 촉각과 후각과 상상력과 영감을 총동원하여 세상을 알아 갔던 그녀의 삶과 내면세계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사흘만 볼 수 있다면》, 도서출판 사우 추천사)


설리번 선생과의 만남과 한 줄기 빛

헬렌 켈러 본인이 말하는 생애를 들어보면 헬렌이 설리번 선생을 만나기 전의 상태를 허깨비의 세상이라고 했고 본인이 암흑 속에 갇힌 유령이라고 표현했다. 허깨비나 유령은 《나의 스승 설리번》에서 나오는 말로 설리번 선생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세계를 대비하기 위해 표현이라고 본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헬렌은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빨라서 6개월에 말을 시작하고, 첫 생일에 걸음마를 뗀 아이였다.


헬렌 켈러(1880년 6월 27일~1968년 6월 1일)는 알라배마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만 해도 정상이었으나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각과 청각을 잃었고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외에 손상을 입은 신체 부위는 없었으나 두뇌와 정신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설령 헬렌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지능이 있더라도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헬렌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헬렌은 그렇게 세상에 차단된 채, 허깨비 세계에 사는 유령이 되었다.(《나의 스승 설리번》, 헬렌 켈러, 문예출판사, 2015)


인물에 대한 기록을 남긴 포털사이트는 헬렌 켈러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했다.

그녀의 부모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유로 보스톤에 있는 퍼킨스 맹학교에서 앤 설리번을 헬렌의 가정교사로 모셔온다. 앤 설리번과 헬렌이 함께한 초기에 이야기, 다시 말해 헬렌이 정신적, 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이야기가 이 책 속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에 담겨 있다. 이 이야기는 1902년 <레이디스홈 저널>에 맨 처음 발표되었다. 헬렌 켈러는 1904년 가정교사 앤 설리번의 도움으로 비장애인도 힘들다는 레드클리프 대학 졸업이라는 과업을 성취했다. 미국 시각 장애인 기금의 모금 운동을 벌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등 자신의 일생을 장애인들을 위해 바쳤다. 이외에도 헬렌켈러는 여성인권운동가, 스베덴보리파, 사회활동가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활약하면서 대통령 자유 메달과 수많은 명예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1968년 세상에 떠났다. 그녀의 유골은 워싱턴 DC에 미국 국립대성당에 안치되었다.(지식백과, 해외저자사전)


햇살 가득한 정원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몸부림

요약된 전기 외에 앤 설리번 선생과 40년을 동행한 헬렌 켈러의 가정환경이 어떠했는지는 그녀가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기억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쾌활하고 활동적인 아버지와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어머니의 양육을 받았으나, 주변의 자연환경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도 눈멀고, 귀 먹고, 말 못하는 헬렌은 7살이 될 때까지 암흑 속에서 살았다. 그와 같이 심각한 중복장애에 갇힌 딸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 싶어서 백방으로 노력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헬렌은 이렇게 그리고 있다.


어머니. 병에 걸렸다 나은 후 첫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통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거라곤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엄마 옷자락에 매달리거나 엄마 무릎에 앉아 있고 했다는 것뿐이다. 어머니는 내가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탁월했다. 나는 어머니가 뭘 좀 갖다 줬으면 하고 바라는 낌새를 금방 알아채고 곧잘 계단을 오르내리며 어머니가 지시하는 곳으로 내달렸다. 사실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지혜가 있었기에 나의 기나긴 밤은 늘 밝고 좋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매우 자유롭고 관대하며 가정에 충실한 뿐이었다. 사냥철을 제외하곤 우리 곁을 떠나 있을 때가 좀처럼 없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그래서 집안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첫물 포도와 최상급 딸기를 가져와 내게 주었다. 아버지가 애정이 듬뿍 담긴 손길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 덩굴에서 저 덩굴로 나를 이끌던 것을 기억한다. 나를 무엇보다도 기쁘게 한 건 아버지의 열정적인 유쾌함이었다.(《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 도서출판 사우, 2018)


빛을! 제발 나에게 빛을!

7살까지 교육을 받지 못한 헬렌이 벨 박사와 보스톤 파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의 애너그노스 교장을 통해 앤 설리번 선생을 만난 것은 그녀 인생에서 마치 출애굽과 같은 사건이었다.


바다에서 짙은 안개를 만난 적이 있는가. 바야흐로 내게 교육이라는 게 시작되려 할 즈음 내 모습이 꼭 바다에서 안개를 만난 배와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항구를 찾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빛을! 제발 나에게 빛을!” 내 영혼은 그저 소리 없는 외침을 내지를 뿐이었다. 한줄기 사랑의 빛이 마침내 내게 이른 것이다.

일생을 통 틀어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면 바로 이 날 내가 앤 맨스필드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말이다 무엇으로도 측량할 길 없으리만치 대조적인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생각할수록 놀람을 금할 길 없다 1887년 3월 3일 만 일곱 살을 꼭 석 달 남겨놓은 때였다.(《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 도서출판 사우, 2018)


이어서 1887년 4월 5일, 그러니까 애니가 터스컴비아에 도착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마침내 애니는 ‘물’이라는 단어로 ‘유령’의 의식을 건드렸다. ‘유령’은 손에 컵을 들고 펌프 주둥이에 갖다 댄 채 애니가 펌프로 끌어올린 샘물을 받고 있었는데 물이 세차게 ‘유령’의 손 위로 쏟아질 때 애니는 다른 쪽 손바닥에 되풀이해서 ‘물’이라고 썼다. 어느 순간 유령은 문득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의 정신은 작은 불꽃처럼 펄럭이기 시작했다. 병을 앓고 난 이래 처음으로 기쁨을 느낀 그 아이는 기쁨에 휩싸인 채 자신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며 늘 대기 중인 선생님의 손에 열렬히 손을 뻗었다.(《나의 스승 설리번》, 헬렌 켈러, 문예출판사, 2015)


불가능한 꿈을 이루며 동행한 삶

물을 시작으로 새로운 단어를 익히며 폭발적인 성장을 한 헬렌, 그러나 아는 게 많아질수록 어휘도 풍부해지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때문에 같은 주제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했다. 손바닥에 알파벳을 쓰는 지문자, 손을 입에 대고 읽는 독화 외에 성대를 써서 말하는 구화를 익힌 헬렌은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흡수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언어의 세계를 넓혀갔다. 그뿐 아니라 대학에서 어려운 공부를 해내고, 시각강애인들의 교육과 권익을 위한 강연,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한 집필활동, 2차세계대전후 상이용사들을 휘한 위문활동을 꾸준히 해나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그녀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불가능한 꿈을 이룬 불굴의 정신을 본받고자 했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이 템플대학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때 자신의 일보다 더 기뻐했으며, 설리번 선생이 별세한 후에도 어디를 가든 그 분과 동행하는 자세로 일하며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과 제자의 표본이 되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경험과 사상을 끊임없이 글로 남겼고, 지금도 우리에게 조근 조근 속삭인다. “내일이면 더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그렇게 눈을 사용해 보십시오. 다른 감각도 그렇게 사용해 보세요. 부디 우리에게 허락된 감각이란 감각, 모두 최대한 발휘하세요.”




<헬렌 켈러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첫째 날


헬렌 켈러


내가 만일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은가 상상해봅니다. 내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동안 당신도 앞으로 단 사흘만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셋째 날 어둠이 내릴 때, 이제 다시는 빛이 비추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면 이 소중한 사흘을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당연하게도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보내는 동안 내게 너무도 소중해진 것들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그 후에 다가올 어둠 속으로 그 기억을 가져가고 싶을 겁니다.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용하겠습니다.

첫째 날에는 다정함과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볼 겁니다. 가장 먼저 어릴 적에게 찾아와 바깥세상을 알려주신 내 소중한 선생님, 앤 설리번 메이시의 얼굴을 오래도록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얼굴의 윤곽을 확인해 기억에 소중히 간직하고 그 얼굴을 면밀히 관찰하여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교육하는 힘겨운 과업을 수행하는 데 동력이 된 애정과 인내와 산 증거를 찾고자합니다. 또한 선생님의 눈빛 속에서 온갖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강인함과 모든 사람들을 향한 깊은 동정심을 찾고자합니다.

나는 ‘영혼의 창’이라는 눈을 통에 친구의 마음을 본다는 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직 손끝으로 얼굴에 인간을 더듬어 가며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친구들의 얼굴을 만져서 웃음, 슬픔, 그리고 많은 감정을 감지하고, 누구인지 알아냅니다. 그런 접촉으로 그들의 성격까지 포착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행동을 통해 생각과 성격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을 지켜보고 여러 가지 표현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고 눈빛이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는 없습니다.

적어도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은 나와 함께한 수개월 수년에 걸쳐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들의 대해서는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어울리게 되는 친구들에 대해서는 악수를 하거나 손끝을 입술에 대고 읽어 내거나 또는 내 손바닥에 써준 그들의 말을 통해 얻은 불안정한 인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 근육의 떨림, 손의 흔들림 등을 관찰하여 사람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친구나 지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당신은 그저 무심하게 친구를 쳐다보지는 않나요.

예를 들어 만약 누가 당신에게 지금 떠오르는 대로 친구 다섯 명의 얼굴을 정확하게 묘사해 보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까? 몇몇 분들은 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어려울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실험 삼아 결혼 생활을 오래한 남편들에게 아내 눈 색깔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많은 경우 부끄러워하며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거나 모르겠다고 인정하더군요. 그 뿐 아니라 아내들은 옷이나 모자를 새로 사 한국 꾸미거나 가구를 옮겨 집안 분위기에 변화를 주어도 남편이 눈치 채지 못하더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은 금세 주변을 둘러싼 일상의 것에 익숙해지는 까닭에 놀랄 만한 것이나 화려한 것에만 주의를 기울여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광경을 볼 때도 우리 눈은 게으릅니다. 법정의 기록이 매일같이 보여주는 대로, 사건의 ‘목격자’들은 데 매우 부정확하게 봅니다. 따라서 하나의 사건은 목격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더 보기는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걸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만약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요? 첫째 날은 아주 바쁠 겁니다. 나는 소중한 친구들 모두 불러서 그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기쁜 깃든 아름다움을 외적 증거를 마음에 각인시켜야 할 테니까요. 또 아기 얼굴을 오래 응시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게 열망하는 순수한 아름다움과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알지 못하는 천진함을 포착할 겁니다.

따스함과 부드러움, 쾌활한 우정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반려견들, 침착하고 신중한 작은 스코티시테리어종 다키, 건장하고 사려 깊은 그레이트데인종 헬가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눈을 뚫어져라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바쁜 첫날에 나는 집에 있는 작고 단순한 물건들도 봐두고 싶습니다. 발밑에 깔린 양탄자에 따뜻한 색깔, 벽에 걸린 그림, 다른 집과 우리 집의 사소한 차이를 모두 보고 싶습니다. 내 눈은 아마도 지금까지 읽어온 점자가 새겨진 책을 감사히 둘러보겠지만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인쇄된 책에 열렬한 관심이 갈 겁니다. 내 삶의 긴 밤 동안 내가 읽고 들어온 책들이 크고 빛나는 등대가 되어 인간의 삶과 정신에 접근하는 가장 깊은 물길을 안내해주었기 때문이겠지요.

첫날 오후 나는 숲으로 긴 산책을 나갈 겁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내 눈을 취하게 하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항상 펼쳐져 있을 장대한 광경을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필사적으로 빨아드리고자 할 것입니다. 숲길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 농장에 들러 부지런한 말이 밭을 가는 모습(어쩌면 트랙터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요)과 흙을 가까이 하고 사는 사람의 고요한 만족감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채로운 색상의 석양, 그 찬란함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연이 어둠을 명하였지만 인간의 천재성은 인공 빛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세상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황혼이 지고 나면 나는 인간이 만든 빛의 세상을 경험하고 두 배나 큰 기쁨을 누리겠지요. 첫째 날 밤,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나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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