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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Apr 15. 2020

행복 방앗간

- 코로나 블루의 강을 건너는 생활 백신

행복 방앗간

 진화 이경희

방앗간에 가는 날은 즐거운 날이다. 시루떡이나 가래떡을 하고, 참기름을 짜거나 고추를 빻으러 가는 날은 어머니를 따라서 시장 구경 가는 날이었다. 방앗간에 가는 것이 명절을 맞이하고 잔치를 준비하며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하는 일이라 전날부터 쌀을 씻어서 불리고 새벽에 집을 나서기도 했다. 특히 설날을 앞두고 가래떡을 할 때는 쌀을 담은 양푼 옆에서 어머니 대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굳이 방앗간에 가지 않고 집에서 떡을 만들기도 했는데 찰밥을 쪄서 절구에 찧어 미리 볶아서 장만한 콩가루에 묻혀 별미 인절미를 만들었다. 맷돌에 엿기름을 갈아서 식혜를 만들고, 녹두를 갈아 녹두전을 부치거나 불린 콩을 갈아 콩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많은 양을 기계로 갈고 믹서를 쓸 때보다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신청만 하면 전국 어디서든 떡과 식품이 택배가 되는 시대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집에서 만들지 않지만 방앗간은 빵집과는 다른 정취가 있고 가정식을 위한 소규모 공장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외출을 삼가고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으며 방앗간이 떠오르는 건 대부분의 장을 인터넷으로 본다고 해도 손의 수고와 정성이 없이는 집밥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감염예방을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가족들은 생전 처음 좁은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내며 고충을 토로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오던 가족들의 세 끼 식사를 챙기는 30-40대 주부들은 아이들의 공부와 놀이까지 책임지는 것이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힘들다고 한탄하고, 재택근무와 자녀양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모들은 코로나 블루를 호소한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즐겁게 하려면 모든 집안일을 손수 하거나 방앗간 정도의 도움을 받던 어머니 세대로 돌아가서 배워야 할 지혜가 있다. 그 지혜는 몸과 마음의 헌신, 사랑의 수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태로 인해 전력 질주하던 시간이 뒷걸음치는 것을 생활 전반에서 경험하며, 이 수상한 시대를 넘어가려면 추구하던 가장 소중한 것부터 지켜야 할까 자문자답을 한다. 중년 세대는 저마다 일을 열심히 해서 저축을 하고, 먼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평생에 한 번이라도 장기간의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해서 피해야 할 일이 되어 버렸다. 청년들의 학업과 축제, 배낭여행과 워킹홀리데이도 멈추고, PC방과 만화방, 카페와 클럽 출입도 금기시될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가 끊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동네 편의점에서 한 달 동안 일할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데 30명이 신청했다는 얘길 들었다.

청춘남녀가 직업을 갖고 데이트를 해야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을 텐데 결혼식마저 무기한 연기가 되고 있는 현실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3월로 잡았던 조카의 결혼식을 6월로 옮겼는데 그때는 꼭 직접 축하해 주고 오랜만에 일가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며칠 전에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자주 가는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 다녀갔다는 안전문자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내가 장을 보고 불과 한 시간 후에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정보가 있었다.

가족이라 해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환자들의 입장도 안타깝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부지중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최소한으로 줄여온 외출도 금하고 웬만한 쇼핑은 온라인으로 하고,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하며 나와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자 한다.

태어난 지 5개월 되어 쌀미음으로 이유식을 하기 시작한 손녀와,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한 주일에 한두 번 씩 찾아가서 시간을 나누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이 견디기 힘든 시기에 용기를 주는 비밀의 에너지원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그동안 교통비나 외식비를 종이책을 사서 읽는 데 쓰고 매일 짧은 글을 쓴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온라인 카페를 통해 글, 그림, 음악과 문화계 소식을 나누며 협업으로 릴레이 소설을 쓰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업무상 소통은 온라인 화상회의나 다자 통화로 하고, 개인 코칭은 온라인으로 하고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심리적 재난을 당한 분들과 기족을 위해 마음백신 코칭의 창을 열어놓았고, 사회적 동반자들과 더불어 공감식탁을 나누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연락이 뜸한 분들과 음성통화를 하거나 작은 선물을 택배로 보내는 것도 행복 방앗간을 운영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노력을 하며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다리다보면 막 쪄낸 떡을 맛있게 나눠먹을 수 있는 날 속히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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