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지면서 몇 차례 큰 눈이 내렸다. 집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함박눈을 맞으며 뛰어다녔고 가족이 함께 눈을 뭉쳐서 눈, 코, 입을 장식하고 저마다 특색 있는 눈사람을 만들어서 세워두었다. 색색의 머플러와 모자로 멋을 낸 눈사람, 각종 캐릭터를 닮은 눈사람, 걸작 조각 작품을 복제한 눈사람까지 미술 전시회와 같이 기발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가 하면 오리 모양을 찍어내는 집게까지 생겨서 아파트 단지마다 귀여운 오리 떼가 등장 했다. 직접 만들지는 않아도 재미있는 모양의 눈사람을 보며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나 눈사람을 반기는 건 아니었다. 어느 지역 온라인 카페에는 눈오리 플라스틱 집게는 환경오염이라고 비판하며 ‘꼭 눈오리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어떤 이는 자신의 차 위에 쌓인 눈으로 아이들이 오리를 만드느라 차에 흠집을 내니 오리 만들기는 못 하게 해달라는 호소문을 썼다.
본인이 만든 눈사람을 일부러 무너뜨리는 행인의 동영상과 함께 눈사람을 부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글도 있어서 며칠 간 논쟁이 뜨거웠는데, 원만한 해결이 되지 않았는지 눈사람과 눈오리 집게 사태가 뉴스까지 나왔다.
눈 온다고 뛰어나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하는 이들과 본인의 신념을 내세우며 무너뜨리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 정서적인 온도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떤 이는 눈사람을 부수는 행동이 동심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분개하고, 누군가는 그 사람도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이해하자고 한다. 각각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웃과 얼굴을 마주 보며 허물없이 지내던 시절과는 달리 각자의 입장에서 내는 목소리가 증폭되면서 갈등이 치달아 오른다는 느낌이 든다.
눈사람은 다음 날 해가 뜨고 날이 풀리면 녹아내리고 결국 저절로 허물어지고 만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형태의 눈사람 속에 웃음코드가 들어 있거나 갈등의 요소가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느냐에 따라 재미있는 놀이나 작품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쓸데없는 행위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한 아빠와 빈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의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한 주민의 사례가 있는가 하면, 집이 바로 초등학교 옆이라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에 활기를 찾는다는 독거노인의 말씀도 들었다. 이해관계가 엇갈린 공동주택의 층간 소음이 이웃 간의 분쟁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번번이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의심스러운 어른들의 행동이 혹시 아동학대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일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며 대립하는 구도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신고정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지 시시각각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눈사람은 직접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지만 사람들 간의 교감과 친밀도, 이해관계에 따라 캐릭터가 바뀌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머잖아 16개월 된 손녀도 눈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자고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집안에서 눈사람 인형을 업고 다니던 아이가 처음으로 만든 눈사람이 이웃의 따뜻한 환대를 받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