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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Aug 30. 2018

한여름 밤의 동네 음악회

진화 이경희


일박이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동행하는 오랜 친구 다섯 명은 이년 전부터 계절마다 짧은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프리랜서지만 친구들이 아직까지 직장에 다니거나 개인사업을 하고 있기에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주말을 이용해서 만나 식사하고 놀고 하룻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시간이 한 계절을 살아갈 힘을 준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마침 이번에는 내 생일 즈음이라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여름 여행은 안성에 전원주택을 짓고 아래윗집에 사는 두 친구가 동네오케스트라에 출연하여 첼로와 플루트를 연주한다기에 공연을 축하할 겸 내려가는 길이었다. 나는 오전에 대학생 그룹코칭을 마치고, 전철과 시외버스를 이용해서 안성까지 가서 친구들과 합류했다. 35도를 넘어 서는 뜨거운 날씨 속에도 초목은 싱싱하게 물이 올라 생명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장마가 지난 후 내리쬐는 강력한 햇볕은 그렇게 알곡과 열매가 영그는 에너지다. 대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은 찌는듯한 더위 중에서도 주인이 정성껏 가꾼 만큼 가지런하게 줄을 맞춰 자라고 있었다.


동네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는 곳은 안성 외곽의 농촌에 있는 작은 교회였다. 오십 명 정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아담한 공간에 삼십 명이나 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는 동네오케스트라는 초등학생부터 칠십대 중반의 노인까지 단원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레슨을 맡아서 해주는 분들은 인근 대학의 음악대학교 학생들, 지휘자는 성악을 전공한 선생님이었다. 평생 바이올린 연주가 꿈이었다는 할머니는 큰 수술을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연습 시간에 참여하고 개인적인 연습을 했다고 한다.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향의 봄’ 연주만 따라할 수 있는 초등학생 일학년 여자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하게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 독주, 이중주, 앙상블, 오케스트라가 전문가들의 연주회 못지않은 순서로 진행되었고, 복음성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대학병원 의사이며 교수인 친구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 문학의 밤에 출연할 때처럼 단정한 자세로 서서 플루트를 연주했고, 은행 지점장을 하다 개인사업을 하는  친구는 평소 여유 있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첼로를 안고 활을 그었다. 아직도 현직에 있으면서 짬을 내서 동네오케스트라에 참여한 일이나, 평생 도시에 살다가 인생후반기를 전원생활을 하기로 한 결정이나 그들의 용기가 참 대단하다. 음악회가 끝난 농촌의 밤은 서울과 달리 캄캄하고 논과 밭 주변에는 개망초와 강아지풀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꺾여서 꽃다발이 되어 시드는 꽃보다 환한 달빛 아래 춤추는 들풀의 군무가 친구들의 역동적인 인생이막에 더 어울렸다.


음악은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얼마 전에는 다문화청소년을 위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해 진로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사랑의열매 공동모금회를 통해 기업에서 후원하는 사회공헌 사업이다. 베네주엘라의 빈민 청소년들에게 마약과 총 대신 악기를 들려주어 기적을 일으킨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소나기 오케스트라 사업은 3년 후에 국내외의 공연을 목표로 악기 수업을 하고 있다. 안성의 동네오케스트라도 한 분의 독지가가 악기를 기증하고 뮤직샘 음악연구소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된 일인데 교인 30 명의 작은 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하면서 정기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일정액의 예산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조용히 나선 사람이 기업을 운영하는 우리의 친구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음악전공자를 위해 오랫동안 장학금을 준 친구가 참여한 동네오케스트라가 계속될 수 있도록 묵묵히 후원을 하고 있다.


삼복더위 중에 차분하게 사색을 하는 것은 어울리거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생일 앞뒤로 며칠 동안은 그동안 살아온 길과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한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10의 22제곱을 하면 은하계 밖 우주에 이른다는 것, 10의 마이너스 16제곱을 해서 내 몸의 안으로 들어가면 DNA 깊숙이 양성자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내 삶의 핵심은 유전자(gene)를 공유하는 가족들과의 오케스트라, 비유전적인 문화유전자(meme)를 공유하는 친구들과의 살아있는 인생 오중주, 그리고 누군가의 연출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대하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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