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2달 살기
필리핀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아이들과 클락에서 놀러 갔던 이야기?
한국인 없던 보라카이 이야기?
내가 멋지다던 남자들은 게이였던 이야기?
클럽, 워킹스트릿 방문기?
여러 가지 생각해 보니 정말 가슴에 남는 사람들로 필리핀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2달 동안의 짧지만 긴 필리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을 정리해 보자면,
크게 시니어, 아빠, 엄마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내가 간 학원에는 아이들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시니어 분들이 더 많았다.
의사로 퇴직하고 해외 의료봉사를 가기 전에 영어를 연습하러 오셨다는 분,
군무원 퇴직 후 대학원을 가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하러 오셨다는 분,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유쾌한 철학자 같으신 분,
회사에서 골프 배워오라고 하셨다며 학원에서보다는 골프장에 계시던 두 아들을 유학파로 키우신 분,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고 내 주위에는 없던 분들이었다.
내 주위에는 50대에 영어 공부하라고 하면 인생 다 살았는데, 왜 공부를 하냐는 사람, 이제 와서 영어 한다고 인생 바뀌지 않는다는 사람, 자기 머리로는 공부가 안된다는 사람 등 새로운 것에 도전적이지 않고 무서워하며 영어 공부를 마치 대단하고 머리 아픈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필리핀에서 만난 시니어들은 제2의 인생을 꿈꾸며 필리핀으로 왔다.
새벽에는 학원에서 조깅을 하시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수영, 탁구 등 운동을 하며 마사지도 받으러 가시고 책도 보시고 여유를 즐기셨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멋진 인생을 즐기러 오신 분은 모두 할아버지들이었다.
여자의 입장으로 이렇게 인생을 즐기는 할머니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들이 필리핀을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면 그 가족은 굉장히 흔들거리고 있는 상태인 거다. 우리 가족은 이민을 준비하기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가족이고 다른 아빠들도 뿌리가 흔들거리고 있는 한국생활에 지친 아빠들이었다.
괌에서 둘째를 원정 출산한 아빠가 첫째만 데리고 필리핀에 온 가족,
대기업 회사 생활하다가 희망퇴직하고 부동산 투자를 하고 온 가족도 있었다.
아마 남들과 다른 결정을 했으니 다른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 가족들의 다음 인생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학 가족의 형태는 엄마와 아이들이다.
엄마 혼자 2~3명의 아이와 함께 필리핀에서 아이를 돌본다. 이 엄마들이 얼마나 개성이 강한지는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들 본인만의 철학이 있으면서 짜여놓은 판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쉽게 SKY 대학을 가는지 이들은 알고 있었다. 많은 수가 집에 TV도 없고, 아이에게 약물도 되도록 쓰지 않고(설사나 열 같은 부분만),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보다는 내 아이의 발전을 추구했다. 마음이 아픈 부분은 속 이야기에 들어가면 대부분 부모님과 사이가 나빴다. 아마 사이가 좋아서 인생이 편했다면 외국을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와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살만한 세상이지만 도와주기는커녕 힘들게 하는 사람들만 옆에 있으면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법이니...
나는 아직도 전셋집에 살고 있어요.
한 시니어 분께서 나에게 격려를 해주시며 말을 꺼내셨다.
"그래도 난 내 아들 둘을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 생활을 시키고 대학도 보내고 1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로 함께 여행을 가고 틈나는 대로 대화하려고 노력해요. 내가 돈을 더 버는 것보다 자식을 잘 키우는 게 더 좋은 거야... 많이 경험하게 만드는 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에요. 돈을 모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쓰냐가 중요한 거지. 잘하고 있어요! "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다시 한번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우리는 언젠가 죽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돈이 중요할까? 많은 경험을 하고 후회 없이 죽으리라.
아마 저렴한 필리핀 어학연수는 많은 이들에게 다른 인생을 사는데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It's Ok, You're just going a different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