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곳에 정착 하여 사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내 집이 주는 안도감은 우리를 안정시키지만 또 한편으로는 변화와 새로운 기회를 막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전학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내가 살던 동네를 떠난 것은 대학교때와 필리핀 어학연수, 호주 워킹홀리데이 뿐이었다.
직장을 잡고도 월세, 생활비가 아까워서 집을 떠나지 않았고, 결혼 해서 잠시 떠났다가 아이를 가지고 다시 원래 살던 동네로 왔다. 그 동네에서 34살 쯤 집을 구매 했기에, 아마 그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겠구나 생각했다.
이동의 시작은 필리핀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한달 이상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어려서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을 때 여유롭고 자유로운 기억이 있어서 아이들이 생기면 필리핀 어학연수를 꼭 함께 가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 몰랐다.
2021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가고 있었는데, 남편의 영어 성적 때문에 핑계반으로 외국 여행이 시작 되자마자 예약을 해서 필리핀 2달 어학연수를 떠났다.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내가 평상시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는 것 아닐까?
필리핀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듣고 한국에서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생각이 확장 될 수 있었다.
문제는 필리핀에서 돌아 온 후였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안정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서 한 회사를 10년 동안 다녔다.
남편도 동일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갑자기 집이 없어졌다.
어디로 가야하나? 라는 의문에 무작정 바다 근처로 가고 싶었다.
그것도 살면서 딱 1번 가본 '부산'에 가보고 싶었다.
부산에 한달 살기를 가자!
우리가 잠시 쉬어갈 수 있던 곳은 부산 '영도'의 작은 아파트 였다.
집앞에는 바다가 출렁이는 오션뷰에서 눈뜨면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챙겨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부산은 아이들이 체험 할 수 있는 곳도 많았다.
특히 영도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은 도서관도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도 무료라 일주일에 한번씩 갔다. 또 영도의 도서관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이 지하에 있어서 아이들은 밑에서 놀고 나는 책을 보며 시간을 가졌다. 점심은 도서관 옆에 시민센터에 있는 6천원짜리 부페로 한끼를 떼웠다.
심심하면 천원 짜리 줄 낚시 두개와 2천원짜리 지렁이를 들고 집 앞 바닷가에 나가서 낚시를 즐겼다.
아침에는 내복 차림으로 집 앞 바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영도에 고깃집이 저렴하고 놀이방이 있는 식당이 많아서 3만원으로 저녁 외식을 하고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놀고 고깃집에서 무료로 주는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고 왔다.
너무 좋아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니 여름 휴가를 맞이하여 친구들이 3팀이나 우리집에서 숙박했다.
한달을 부산에서 살다보니, 왜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아닌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우리가 집에 계속 있었으면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해 보지 못했을꺼야.
이민 수속이 늦어지고 부산에 한달 살아보니 다른 곳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동 한 곳이 '거제도' 이다. 거제도는 아이들이 어릴 때 와서 생선구이에 반했던 곳이다.
살면서 2번 와 본 곳이었는데, 거제도에 간 특별한 이유는 옥포동에 한달 살기 방 값이 저렴했다.
거제도에서 운이 좋게 집 주인이 주소 등록을 하고 살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아정이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아준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아준이가 가면 매일 끌어 안아 주면서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게 보일 정도로 아이들을 잘 해 주셨다. 집도 바다 바로 앞, 조용하며 외식하기 편한 집이었다.
거제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 좋았다. 순박하고 여유 있고, 그냥 좋았다.
그리고 축제도 굉장히 많은 곳이다.
한달에 2~3번은 축제가 있어서 밤까지 축제를 즐기고 돌아가기를 몇번 했다.
아이들을 위한 축제도 있어서 매주 축제를 따라다닌 좋은 기억이 있다.
또한 어디를 가도 잔잔한 바닷가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이 한명도 없는 조용한 바닷가를 찾기가 쉽다.
아이들은 바다에 오면 신이 난다. 돌맹이 줍고 조개 줍고 돗자리만 가지고 나가면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놀 수 있다. 이 곳에서도 줄 낚시를 즐겼다.
회와 대패삼겹살이 저렴하여 한끼에 3만원이면 4명이서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다. 물론 아이들은 많이 먹지 않아서 가능했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 곳이라 아이들은 숲속에서 목공체험도 하고 건강하게 뛰어 놀고 올 수도 있었다.
시골에 살면 왜 좋은지를 거제도에 살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집도 없는 김에 일본도 다녀왔다.
캐나다에서 일본 여행을 가는 것은 너무 비싸기에 일본 땅을 한번도 밟아 보지 않고 일식을 했던 남편을 위해 오사카 여행을 갔다. 오사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음식이다. 저렴한 음식이 퀄리티도 높았다.
이래서 일본 먹부림 여행을 가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참치, 연어, 연어알 등이 들어있는 회모듬이 2만 5천원, 마블링 좋은 소고기가 30% 할인하여 15,000원!
에어비앤비를 얻은 덕분에 맛난 음식을 저렴하게 먹었다.
낚시를 하여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고 식당마다 특색이 있어서 방문하는 재미가 최고 였다.
다음으로는 평택에서 6개월 동안 정착했다.
지인이 평택 고덕에 식당을 열었는데, 일할 사람이 마침 부족한데 우리가 집 하나 남는 것 있으면 저렴하게 제공해 달라고 연락을 해서 시기가 맞았다.
평택은 시골체험하기에 좋았다. 장롱 운전 면허 16년 경력의 내가 운전을 시작한 곳이 평택이다.
고덕 신도시에는 차도 많이 없고 도로도 잘 되어 있어서 초보 운전사에게 운전을 연습하기 더 없이 편한 곳이었다. 겨울에는 썰매체험도 하고 봄에는 딸기 체험도 하고 5월 5일에는 어린이날 축제에 방문하여 무료 체험들과 먹을 것을 즐기기도 했다. 도서관도 잘 되있어서 매주 토요일은 도서관에서 2~3시간씩 책을 읽고 빌려서 왔다. 평택도 거제도 못지 않게 축제가 많아서 주말이 심심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에 오기 전에 방문한 곳은 베트남의 호이안과 다낭이다.
이제 곧 비자가 나올 것 같아서 식당일도 그만 둔 후라 지인이 제공해 주었던 숙소에서 계속 신세질 수 없기에 어딘가로 가야했다.
한국에서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이나 동남아에서 있는 것이나 금액이 비슷 할 것 같아서 베트남으로 갔다.
베트남은 아이들어릴 때 왔었는데, 역시 여행은 아이들이 좀 커야지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
어릴때는 먹는 것도 아무거나 못먹고 걱정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먹고 싶은거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재미나게 보낼 수 있었다.
금상첨화로 베트남 여행 중 캐나다 비자 완료 소식을 듣고 걱정 없이 풍족한 마음으로 마사지도 즐기고 음식도 즐겼다.
이 모든 추억이 집이 없어서 가능했다.
만약 우리가 살 집이 있었으면, 그 전과 똑같이 1년 반을 지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지낼 곳이 없었기에, 남해 바다가 아름다운 것도 알았고 대한민국의 자연환경이 훌륭한 것도 알았다.
도시 촌놈들이라, 경험이 부족했는데 혹시나 나중에 한국에서 살고 싶어 질 때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부산, 거제, 평택....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봐도 너무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다.
그렇게 집 없는 1년 반동안 한편으로는 불안했지만 멋진 추억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