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특히 부모란, 무조건 희생을 해야한다.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은 부모의 행동이였고 욕심이었다.
아이들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 한 채, 부모가 정해져서 나왔고 그 부모 밑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부모는 자신의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들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나의 아바타도 아니며 꼭두각시 인형도 아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는 아마 부모가 더 성장 할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 준 선물 일지도 모른다.
탄생 후 부터 부모는 생전 처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아이를 통해서 배우기 시작한다.
내가 먹을 것을 먹지 않아도 아이가 먹으면 행복한 감정,
아이의 손짓 발짓만 봐도 행복하고 웃음이 나오는 사랑의 감정,
내 아이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이성적이지 못한 감정,
아이의 웃음으로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마법같은 감정,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의 감정들을 아이를 통해서 배우고 늙어간다.
그렇게 내 모든 것을 전달하고 아이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부모의 몸과 마음을 바치고 이 땅의 한줌 흙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내의 짧은 인생 사이클인데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집단 보다 회사, 사회라는 집단에 인정을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양육해야하는 엄마는 아이를 돌보는 것 보다 회사에서 인정 받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 아빠는 자신의 취미생활과 회사, 명예를 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오기는 하지만, 그 돈으로 허황심과 잠깐 사용하고 버릴 쓰레기들만 잔뜩 안겨준다.
식물이 성장함에, 물과 토양과 햇빛이 필요한 것이 자명하듯,
아이가 성장함에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관심과 사랑을 돈으로 대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만 가져다 준다.
아이들은 부모가 그랬듯 돈을 관심과 사랑으로 착각하고 비 정상적으로 자란다.
아이들이 발산해햐 하는 호기심과 연습행동, 생각들을 동영상 시청으로 막아 버리고,
부모들과 해야하는 역할 놀이, 책읽기, 오늘 하루 있던 일을 발표하기 같은 것 또한 유튜브로 대신한다.
종이로 오리고 접고 풀칠하여 무엇을 만들어보는 성공 경험은 값비싼 장난감으로 대신해 버린다.
부모가 도와주어서 떼어야하는 한글 공부는 선생님으로 대체하여 학원 선생님 없이는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를 만들어 버린다.
사랑이 했던 많은 일들은 동영상, 장난감, 학원 같이 돈으로 대체 되어 버린다.
그럴 수록 아이들은 사랑이 부족해져서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데,
부모는 심리 상담, 해외 여행, 더 비싼 장난감 등 더 많은 돈으로 그 사랑을 대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호기심과 연습하는 행동에 시간을 주기, 아이와 함께 하는 역할 놀이, 책읽기, 대화하기,
종이 놀이, 요리 하기, 한글 공부 이 모든 것이 무료인데 자꾸 아이들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돈 탓'만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다.
혼자의 늪에 빠져 바쁘게 사느라 확연히 보이는 것을 놓치고 지나친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한채, 죽을 때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허무함과 외로움에 허우적 대다가 사랑하는 이 하나 없이 죽을 것이다.
부모는 평생 부모여야 한다. 사랑을 주어야만하고 받기를 원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아이들이 다른 사랑의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다음 세대로 전해 질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이 그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 봐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 부모다.
이 자연적인 현상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핸드폰을 없애야할까? 우리를 세뇌시키는 자본주의 미디어를 없애햐 할까?
미디어는 당신에게 무엇을 자꾸 팔려고 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초라하게 만들 것이고 죽을 때까지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열망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돈이외의 것의 가치는 절하시키고 예비 쓰레기를 사는데 집중하여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당신이 부모라면 이 연결고리를 끊는 것은 당신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