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르겠어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이상하고 이해 안 가는 행동을 보면서 아이를 책망하고 상대편 배우자를 책망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아이가 닮은 사람은 아이가 본인을 닮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부모에 성향에 영향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경질적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 부모의 신경질의 화살이 나에게 꽂힐지 모르기에 눈치를 보고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도록 타인 혹은 형제자매가 타켓이 되도록 유도한다.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가정일수록 아이들은 약삭빨라지고 측은지심은 말라간다.
부모의 매와 질책을 피해야 하는데 측은지심이 웬 말인가.
그렇게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학습될 수도 있다.
인간은 동물이다. 특히 공격성이 내재된 동물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하고 그것은 도덕심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이다.
누가 사마귀가 잠자리를 사냥한다고 사마귀를 도덕성이 없는 곤충이라고 비난을 하겠는가.
내가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것이 타깃이 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다.
인간에게 새를 죽여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끔찍하게 생각하고 벌벌 떨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끔찍한 일이 아닌 유희가 돼버리고 만다. 또한 양계장 주인에게는 돈벌이가 된다.
강한 자가 되지 않으면 먹힌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여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본성을 억누르며 도덕과 법이라는 본성을 통제하는 사항을 만들어서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본성보다도 이성이 필요한 사회다. 누구는 이 학습이 잘 되어있고, 누구는 이 학습이 덜 되어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가정환경이다.
어떤 집은 본성의 끌림으로 살고 있고, 어떤 집은 본성을 통제하는 힘들 가르치며 살고 있다.
화가 난다고 아이를 때리는 부모,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소리치며 싸우는 부모,
인간은 제각각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본인 입장에서만 말하는 부모,
아이가 원하는 것보다 본인이 편한 방법만을 추구하는 부모,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
자기가 생각하는 박스 안에서 벗어나면 화를 내는 부모,
이런 부모의 눈을 피해 자신이 살고자 아이들은 영리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영리해지면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영리해져서 본능에 따라 타인을 괴롭히며 유희의 시간을 보낸다.
부모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복사를 하며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어린 시절 배워야 하는 신뢰, 노력, 사랑, 협동, 배려의 감정은 배우지 못한 채 혐오감, 편 가르기, 남탓하기, 자기중심적인 세계관, 피해 의식, 증오, 복수심만 배우고 성인이 된다.
공교육을 받으며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배우며 커왔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급속하게 배우며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그 낙오자 인생에서 남을 책망하며 더 깊이 빠져든다.
결국 가장 쉬운 인생인 부모의 인생을 다시 살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과 동일한 가정을 만들어 자식에게 문제적인 행동을 대물림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굴레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누가 끊을 수 있을까?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기 위해서는 첫째로 인식이 필요하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나'이다.
인생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일단 그 인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독서이다.
당신의 인생이 힘들다면, 무언가가 잘 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열쇠는 타인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다.
변화할 것인가?
그냥 죽을 때까지 똑같이 살 것 인가?
변하지 않는 다면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부모를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