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맘의 고미당 창업일기
나의 삶은 다른이들과 같이 참 처절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고단한 삶,
회사, 육아, 회사, 육아를 반복하는 죽지 못해서 아니 죽기가 무서워서?
죽으면 아이를 책임질 수 없으니, 아이때문에 사는 삶이라고 하면 더 적합할까?
왜 사는지 모르는 그런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렸을때 공부를 쪼금이라도 잘해서 그런지 더더욱 사회가 쳐놓은 굴레에서 나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를 낳을때 쯤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 친정엄마와 위, 아랫집에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불행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첫째 아이 출산 휴가 일주일 전까지 만삭의 몸을 이끌고 회사에 나갔고,
출산 휴가를 시작하며 우리 집은 회사가 되어버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현장에서 직접해야 하는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를 재택근무로 가져왔다.
예정일이 지나자 83일 밖에 안남은 출산 휴가 기간이 걱정 되어 촉진제를 맞았지만 진통은 오지 않은채 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져 제왕절개를 택했다.
2015년 9월 18일 금요일, 차라리 업무를 마감한 금요일날 제왕절개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며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을 지내고 수술 복대를 풀지 못한채 돌아오는 월요일, 병원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 다음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병원에서 퇴원하여 조리원을 들어갔을 때.
나의 첫 물음은 "노트북 해야 하는데, 와이파이 어떻게 써요?" 였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집에 오면서 전쟁은 시작 되었다.
아이를 봐준다고 했던 친정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작되면 나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아이를 봐야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온다고 짜증을 냈다.
아이를 낳은 딸에게 미역국이외의 반찬을 해주는 것도 없었다.
눈만 마주치면 짜증과 화를 내는 엄마를 보기 싫어서 최소한으로 엄마를 마주하려고 밥을 먹을때 아니면 엄마 집에 올라가지 않았다.
하루 세끼 밥만먹고 겨우 내려와서 20일 된 우는 아기를 옆에 두고 업무를 시작했다.
아이가 깨어 있으면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하다가 낮잠을 자는 것 같으면 열중해서 업무를 했다.
아기는 밤에도 2~3시간마다 깼다. 우유를 먹이고 트름을 시키면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낮잠 잘때 잔다는데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친정 엄마한테 아이를 맡겨 둘 수도 없이 아이가 울면 나도 같이 울면서 업무를 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난 뒤 출산우울증인지, 육아우울증인지, 그냥 우울증인지...
살고 싶지 않았다.
밤 12시, 10시부터 두시간동안 우는 아이를 안고
이 울음에 깨지 않고 출생이후 한번도 밤수를 하지 않고 잠만자는 남편을 보며
'이래서 뉴스에서 아이를 베란다에 던지는 건가?'
'나는 왜 살고 있지?'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나?'
'죽으면 다 해결이 되는 건가?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그날 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쇼파에 누워 있었고 아이는 다행이도 쇼파 밑에 있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쓰러져서 잠을 잤던것 같다.
그 뒤로 육아에 대한 여러가지 책을 보게 되었고
내가 살고 싶어서.. 그렇게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아기는 이기적인 엄마를 이해 한다듯이 일주일만에 혼자 누워서 자는 60일 아기로 변했다.
아기가 태어난지 83일이 되던 날, 집에 있던 노트북을 챙겨 재택근무를 끝내고 회사로 장소를 이동했다.
그 후, 아침에 회사 출근, 저녁에 집으로 출근, 퇴근이 없는 워킹맘이 되었다.
그렇게 일년을 견디다가 또 다시 둘째를 임신하였고,
둘째때는 하루 전까지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첫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4일 전부터 출산 휴가를 시작했고 첫째와 똑같이 금요일에 출산 하여 토, 일 쉬고 월요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둘째때는 엄마와 사이가 옆에 있지만 말한마디 할때마다 가시로 찌르는 느낌을 받아서 아침도 안먹고 몸조리도 뒤로 하고 지내다가 둘째를 낳은지 2개월 만에 대상포진에 걸렸다.
그때 친정엄마가 한 말은 "아이한테 수두 옮기면 내가 힘드니깐, 수건따로 써라!" 라는 말이 전부 였다.
아이를 하루라도 대신 재워 준 적이 없었다.
아이를 봐주는 친정엄마는 많은 돈을 용돈으로 드리길 바랬다. 처음에 80만원에 장을 봐주는 것으로 시작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200만원을 받는다고 하여 첫째가 2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도 했었다. 80만원도 나에게 부담이 되는 돈이라 무료로 봐주는 어린이집을 보내겠다고 선언 한 후 수많은 싸움 끝에 아이 봐주는 비용을 줄이고 장을 봐주는 것으로 타협 봤었다.
그래도 장을 보고 외식하고 다 합쳐서 한달에 100만원은 들었다.
일 한 후 집에 돌아가 이유식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 이유식도 사먹이고, 모유 수유도 못하고 분유를 먹였다.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되었지만 밤에 잠을 잘 못자는 아이를 케어하는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아이를 낳은게 죄인인 마냥 엄마에게도 미안해하고 회사에도 미안해하며 엄마에게 쓴소리를 듣는 남편에게 미안해 하며 짜증을 내는 엄마를 둔 아이에게 미안해 하며....그렇게 살기 싫은 힘든 평범한 워킹맘 시절을 보냈었다.
내가 변한건 유튜브에 우울증을 검색한 후 였다.
책에 대한 소개, 김미경 강사의 자존감 이야기들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그 후 새벽 4시 미라클 모닝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