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두려운 눈의 여왕들에게....
안녕! 나는 게르다라고 해! 오늘 이 결혼식의 주인공이지!
저기 내 신랑 카이가 오네~!! 미안해! 카이는 쑥스러움이 많아서 눈을 잘 못 마주쳐!!
사람들에게 익숙하지가 않아! 우리가 어떻게 만났냐고? 우린 초등학교 동창이야~! 어린 시절 내 짝꿍 카이!! 정말 우여곡절 끝에 만났지,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나에게 초등학생 때의 기억은 어렴풋이 행복했던 거 같아,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공립학교에 입학했지, 학교에는 아주 꽃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어,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로 하루 종일 책상 앞을 지켰지, 내가 어쩌다 학교 책상에 앉아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만 멍~ 하니 듣고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있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가고 싶은 학교였는데 말이야, 하루 종일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듣고 그에 대해서 시험 보고 또 듣고,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지. 참 웃긴게, 학교를 나오고 생각해 보니 대체 인수분해는 사는데 무슨 필요가 있는거야?? 도덕시간에 배운거랑 왜 현실이랑은 180도 다르지??
졸업한 후에 자꾸 어떤 걸 찾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남들과 똑같이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어, 대기업 이름은 모두 다 아는 주식회사 ‘성’ 이지, 그곳에서 인턴을 함께하면서 친구도 생겼어, 민지라는 친구인데, 얼굴이 까맣다고 깜씨라는 별명으로 다들 부르더라고 깜씨와 나는 인턴 때 함께 의지 하며 함께 했지, 드디어 2년이 지나 정직원 발표가 되었는데, 나와 깜씨 둘 다 합격했어! 모두들 원하는 국내 최고 기업에 말이야! 신입 연봉이 엄청나지! 하지만 갑자기 마음속에서 어떤 말이 올라왔어 ‘게르다야, 이 직업에 만족하니? 이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맞니?’ 나는 어른이되는 준비를 아직 못했었나봐, 그곳에 갖혀서 평생을 지낸다는게 무서웠었어.
그래서 나는 대책 없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거든, 알다시피 내 인생은 대부분 학교에서 보냈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꼭 내 꼴 같았지, 내 친구 깜씨는 정직원으로 입사를 했어! 공항에 인사도 나와줬어, 목에 정직원 이름표를 두르고 와서 사진에 얼굴색이 너무 어둡게 나왔다고 포토샵 잘하는 집을 다시 알아봐야겠다고 투덜댔었지, 전날도 야근해서 오전 반차를 쓸 수 있었다며 다크서클이 눈밑까지 내려와 있는데도 빵빵한 연봉을 받는다고 좋아하면서 타크 서클 시술을 알아봐야겠다고 다음에 만날 때는 뽀샤시한 피부를 자랑하겠다며 인사했었지,
영어를 뜨문뜨문하는 나에게 호주의 하루하루는 고난의 연속이었지, 서바이벌 잉글리시라고 그래도 실력이 늘긴 하는 것 같았어. 어느 날 스시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을 하고 있는데 어두운 골목에서 이쁘장한 여자애가 씩~웃으며 다가오는 거야, ‘어, 연예인인가?? 이쁘다.’ 하고 정신 팔려 있는데 내 앞에 와서 손을 내밀면서 “너 담배 있니?”라고 물어 보더라고. 나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하니깐 그럼 담배 사게 30달러만 빌려달라고 하더라고,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이 50달러라 20달러 거슬러달라고 하니깐, 씩 웃으면서 “난 로냐라고 해, 너 클럽 갈래?”라고 하더니 나를 데리고 시끄러운 클럽에 갔었어, 그날 정말 광란의 밤이었지, 아르바이트 끝나고 매일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그런 별천지가 있는지 처음 알았었어, 클럽이라는 곳이 헌팅만 하고 나쁜 곳인지 알았는데, 호주의 클럽은 참 신기했어, 로냐는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줬지, 술을 한잔도 못 마시면서 술 취한 척하고 있는 미미, 클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연지, 꼭 붙어서 고개 춤만 추고 있는 데이비드와 민규, 발레를 연습하러 클럽에 온다는 베트남 아줌마 쏭캉,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칭 부자 미남 러키, 밤새도록 혼자 뛰어다니는 신디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을 하루 밤 만에 만났던 것 같아.
클럽이 끝나는 아침에 모두 모여서 해장을 하러 맥도날드로 갔어, 나도 어찌 된 일인지 그 모임에 함께 있었어, 모두들 나에게 자기소개를 해줬지, 미미는 술을 먹으면 바로 토해서 술 취한 척을 하는 거래, 그럼 사람들이 술을 권하지 않는다면서 해맑게 웃었어, 정말 귀엽고 현명한 친구였지, 연지는 제2의 피카소가 되는 게 꿈 이래, 클럽에 오면 다양한 조명들이 만들어내는 요묘한 느낌이 좋다면서 오늘 그렸다는 몽환적인 그림을 보여주는데, 정말 멋있는 그림이었어, 데이비드와 민규는 이름만 들어도 남자 들인 건 알겠지? 게이 커플인데 만난 지 3년이나 된 장수 커플이야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금요일 저녁에는 항상 클럽에서 데이트를 한대, 자기네들은 플라토닉 사랑을 추구한다나 어쩐다나..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정색을 하고 말을 하더라고, 베트남 아줌마 쏭캉은 정말 특이한 분이셨어, 카지노 큰손이라고 하던데 맥도날드에 들어오자마자 이것저것 사주시고는 다음 주에 보자며 나가셨어, 시끄러운 음악 속에 조심스레 발을 콩콩콩 구르고 있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러키는 방글라데시에서 호주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래, 집이 부자라 방이 50개가 된다면서 자랑을 하더라고, 키는 2미터가 넘는데 본인은 베지테리언이라며 베지테리언의 장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것 같아. 마지막으로 신디는 호주 토박이인데 학교 선생님이래, 나는 신디를 보고 굿을 하고 있는지 알았어, 혼잣말을 하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더라고 주말에 클럽에서 이렇게 뛰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다며 만보기에 5만이 찍힌 것을 보여주며 오늘도 달성했다면서 즐거워했지, 나에게 담배를 삥을 뜯었던 로나는 자기 부모님은 산적이라며 팔에 새긴 산적 문신을 보여줬어, 타투이스트로 활동 중인데 16살 이후로 1년에 한 나라씩 돌아가면서 살고 있대, 참 대단한 친구들을 만난 거 같았지.
다음으로 내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이 참을 수 없었어.
“나는… 나는…. 미안해 갑자기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나를 소개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지, 십년동안 학교에 다닌걸 말해야 하나? 성에서 인턴을 한걸 말해야 하나? 스시샵 웨이트리스인걸 말을 해야 하나? 갑자기 내 스스로가 처음 마주하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결국 분위기를 깨고 펑펑 울다가 다음 주 금요일 보자고 하며 모두들 헤어졌어.
다음날 아침, 점심을 같이 먹자고 어제 본 러키가 연락이 왔어. 러키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부자인 인생이었는데 속은 텅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찾는 여정을 하고 있다는 거야, 베지테리언이 된 이유도 자신이 자연이라고 느끼고 그에 동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시간을 보내보라고 했어 그 시작이 나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면서 핀란드에서 온 명상 선생님에게 나를 데려다주었어.
간판 이름은 ‘HOT YOGA’ 였지, 선생님은 나의 속에 사랑이 넘친다고 말을 해주었어, 그 넘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서 내가 힘이 든 거라고, 용기를 내서 사랑할 것을 찾으라고 했지, 음악이든 춤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나는 너무 두려웠어,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사랑하다가 다치면 어떻게해? 동물을 키우다 죽으면? 꿈을 쫒다가 먹고 살게 없으면? 운동을 하더라도 일등을 하지 못하면 다 쓸모없는거 아냐? 한 동안 나는 HOT YOGA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명상 시간을 가졌어.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서 초등학교 동창 카이를 만난 거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카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어, 카이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외국 부잣집으로 입양되었다는 게 마지막이었는데, 부잣집 부모님은 정말 바쁘셨었나봐 카이에게 모든것을 사주었는데 함께 집앞 공원조차 가지 않았었대, 아마 나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
나는 카이와 주말마다 만났어, 내 클럽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같이 수영도 하고 낚시도 가고, 집도 가까워서 저녁마다 함께 산책도 했지, 그러는 사이에 카이는 웃음도 되찾고 장난기가 있던 어린 시절 내 짝꿍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지. 사람은 사람으로 밖에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맞나 봐.
그렇게 일 년이 흐른 후 카이는 나에게 청혼을 했어, 그리고 오늘이 우리의 역사적인 결혼식이야! 깜씨는 아직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대, 최연소 팀장이 되어서 일이 더 막중해졌다면서 올라간 월급을 자랑하더라고, 갑자기 해외 출장이 생겨서 지금은 독일에 가있다고 미안하다며 영상통화가 왔어. 다크서클은 여전하더라고, 그래도 인생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로나는 클럽 DJ로 활동 중인데 내 결혼식장을 클럽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며 아침부터 음향체크 중이야, 정말 못 말려,
나의 꿈을 찾았냐고?
웃지 마……
내 꿈은 엄마가 되는 거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사랑하며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엄마…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대단한 존재… 엄마….
여력이 된다면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싶어, 사랑을 듬뿍 주어서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빛이 나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면 인생의 최대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마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태어난거 같아...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랑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곳이 없었어! 내 속에 있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고 사랑을 주면 바보가 된다고 생각을 하며 두려운 마음에 터져나오는 사랑을 마음속에서 누르려 했기에 그 사랑이 곪아서 아팠었는지 몰라.
파랑새 이야기 처럼 진정한 행복은 내 안에 있었는데 이것을 찾기 위해서 그동안 헤맸던 것이 아닐까?
각박한 세상에서 진짜 사랑을 전달 하는 것이 내 일 인거 같아!
지금 힘드니?? 이리와! 내가 사랑을 나눠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