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맘의 식당창업일기
식당을 오픈하기 전,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여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었다.
하나같이 "정말 맛있다!!"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때 바보같이 지인들이 와서 음식을 팔아줄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은 공짜로 제공되던 음식을 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하면 백이면 백, 절대 사 먹지 않는다.
다음에 초대하여 대접하지 않으면 사람 변했다는 말만 듣는다.
지인들이 식당에 와서 돈을 내고 식사를 하면 생각보다 서로 불편하다.
지인에게 돈을 받기도 껄끄럽고, 지인도 돈을 내고 먹기가 아깝다.
모르는 사람 식당에 가서 먹는 것은 편하지만 지인의 식당에 와서 먹는 것은 왠지 불편하다.
서비스를 주는 것도 어떤 서비스를 주어야 하는지 지인의 기대에 맞춰서 준 건지 걱정되고,
지인도 서비스를 받는 것도 불편하지만 안 주면 섭섭하다 못해 미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지 않으면 그 또한 서운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돈이라는 존재가 오고 가면 말로 정확히 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내가 무엇을 공급하는 경우, 지인 중 많은 수를 잃을 수 있다.
특히 자존감이 없고 자신감만 충만한 지인들은 대부분 떠나간다.
자존감이 없는 경우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남도 존중하지 못한다.
남는 것은 질투뿐이다. 지인이 무엇을 공급하는 경우에 그 지인에게 내 돈이 흘러가는 것이 마치 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몇 가지 지인들이 있었다.
자존감이 강하고 사랑이 충만한 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준다.
회사 사람들, 지인, 가족 등등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사람이 오픈했다며 맛있다고 추천을 한다.
나오는 메뉴마다 배달 주문을 해 먹으면서 맛있다며 칭찬을 해준다.
이렇게 자존감이 강한 지인들은 대부분 공급자의 입장에 있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존감이 약한 경우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남을 사랑하기는 더욱 힘들다.
절대로 집 앞이라도 지인이 오픈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매일 다른 식당에 방문해서 식사를 하더라도 내가 오픈한 식당에는 의식적으로 오지 않는다. 물론 내가 싫거나 불편해서 일 수도 있고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 수도 있지만 만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다.
만나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요새 어떠세요? / 장사는 잘 되세요?? / 힘들지 않으세요? 코로나 때문
에 힘드시죠?"라는 말만 하고 지나간다.
나도 자존감이란 걸 전혀 모를 때, 어느 식당을 들어갔는데 옆집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재료가 떨어졌다고 했다. 다음에 오겠다고 말을 한 뒤, 다시는 그 식당에 의식적으로 가지 않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슬픈 일이지만 가까울수록 타인이 잘 되면 질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했거나 싫어하는 게 아닌데,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 같으면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피하지만 나도 그랬었다.
자존감이 없었고 사랑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채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깐,,,, 그런 지인들이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지인들을 안고 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이고 그럴 필요는 없다.
식당을 시작하고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를 누르던 지인들의 무게를 덜 수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구리와 올챙이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옛날 생각을 해서 물속에서만 살면 죽는다.
우리는 착하고 연약하고, 호구 같고 힘이 없어서 남들이 머라고 해도 웃으면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일 대신해 주고 남들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는 시절을 올챙이 시절이라고 부른다.
그 후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당연히 올챙이 시절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그 변화를 이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이 변했다고 말한다.
로또가 당첨되면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이 배우자 이고, 가장 먼저 연락을 끊는 것이 가족, 친구 라고 한다.
대체 왜 그럴까?? 사람의 욕심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된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주위에 내가 잘 되면 함께 즐거워 해줄 친구가 있었고 창업을 한 뒤 어떤 친구들인지 알게되었다.
나머지 반은 흘러갈 수 있도록 놓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