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만 하면 후딱 진행할 수 있는 이민인지 알았지만 3개월 동안 진척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문제는 남편의 IELTS 점수였다.
처음 이민 계획했을 때에는 내 영어 점수로 유학 진행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요리를 하던 남편에게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고맙게도 남편은 매일 아침 8시에 IELTS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4시간 걸리는 강남으로 향했다.
IELTS 학원 첫날, 처음으로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외국인과 대화를 해봤다며 신이 나서 자랑을 하던 남편을 보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외국인과 대화가 처음이라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다.
이 글로벌 시대에, 원어민과 대화를 처음 해본 38살 남자가 과연 IELTS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첫 달의 성적 결과는 역시나 낙방. 다행인 것은 스피킹 제외하고 리스닝, 리딩, 라이팅은 합격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알았으니 두 번째 달부터는 아침에 스피킹 학원을 하나 더 듣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달에 결과가 생각 보다 좋아서 두 번째 달에는 조금 기대했다. 하지만 두 번째 달의 결과도 저번 달과 비슷했고 스피킹이 점수가 3 이 나와서 결국엔 다음 시험을 또 접수해야 했다. 중간에 남편이 저번보다 스피킹 시험을 더 잘 봤는데 3점이 나온 것은 불합리하다며 16만 원을 내고 재 채점을 의뢰했다가 나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지만, 재 채점 결과 3.5 점을 받아 0.5 점이라도 올려서 재 채점 비용을 돌려받았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IELTS 시험 비용을 소개하자면 한번 볼 때 약 30만 원 정도로 사악하다. 컴퓨터 사용을 못 하는 남편은 지필시험으로 계속 보았다. 컴퓨터와 지필의 다른 점은 컴퓨터가 시험 횟수가 더 자주 있고 결과가 빨리 나온다.
세 번째 달은 다른 곳에 있던 무게를 덜고 스피킹에 조금 더 무게를 더 하기로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IELTS 학원을 중단하고 아침에 다니는 스피킹 학원에 전화 영어를 추가하고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보면서 영어 드라마를 듣는 방향으로 공부를 했다. 세 번째 시험 결과 드디어 스피킹 시험이 4점이 나왔지만, 리스닝 점수가 적게 나와 네 번째 시험을 치러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마음이 답답하고 힘이 빠졌다.
나의 마음은 " 왜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까?"에 대한 책망으로 가득했고, 남편은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걸 어떻게? 니가 해봐!"라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 스며들 시기에 운이 좋게도 필리핀 입국이 오픈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 한 번도 보내지 않은 아이들도 걱정되던 찰나에 내 인생의 영어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던 필리핀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