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신호_프랑수아즈 사강
지난 1월,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사강의 신간이 나왔다. 오렌지색 패브릭 질감의 겉표지와 흑백사진은 사강의 감정선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능적이고 우아하며 고전적이지만 한편으론 그녀만의 트렌드가 눈에 띄기도 하는 오묘한 결의 서사. 그녀는 신파안에서 그녀만의 방법으로 마구 헤엄치고 결국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그녀의 서사를 따라가며 문장 곳곳에서 감탄을 연발한다. 어젯밤 잠들기 전 패배의 신호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선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이제까지 읽어온 사강의 작품과는 또다른 통찰력, 세련됨 그리고 내겐 너무 강렬했던 루실이 나로 하여금 잠 못들게 만들었다. 패배의 신호를 읽은 독자들은 공유된 웃음, 루실과 앙투안의 사랑과 쾌락 그리고 샤를과 디안의 고뇌에 집중한다. 그런데 난 유독 루실을 가만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온전히 그녀 자체였던 루실이 너무나 강렬했다.
사강 작품의 여주인공은 늘 그랬듯 자유롭고 분방하다. 여기 루실의 유일한 도덕적 관념 또한 자신의 행복이다. 자기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삶이다. 루실은 생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무책임했고 해맑았으며 그냥 자기 존재가 행복인 여자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가에 의해 행복한것이 아니라 오직 나로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 슬픔이여 안녕의 세실은 조금 얄미웠다. 치기어린 소녀의 성장이었고 조금 유아적인 면이 있었다면 패배의 신호의 루실은 멋있었다. 인간의 행복하려는 의지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싶어하는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원형그대로의 온전하고 순수한 이기주의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자기 확신과 깊은 통찰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세실의 모습에서보다 루실에게서 더욱 선명하게 사강의 모습이 투영된 걸 보았다.
독서와 오직 사랑만을 탐닉하는 루실이었지만 자신이 타락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일망정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성공을 향한 불행한 열정을 추구하진 않았다. 세속적 체면, 기만적 노력, 돈, 명예, 주위 사람, 아무것도 없는 날 것 그대로 그녀는 자유했고 행복했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충실함으로써. 루실의 모든 모순 때문에 그녀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명랑함과 재미, 착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루실은 자신의 삶을 박탈당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여자였다. 대체 이런 사람이 얼마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온전히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친 인간사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대부분 사람들이 체면과 기만, 허영으로 인생을 허비한다. 그 속에서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발걸음만을 바라보는 여자와 그녀를 소유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봐라봐주는 스무살 많은 부유한 이 남자와의 결실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둘의 허영일까? 나는 이것을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진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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