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1972억원 낙찰-모딜리아니
2019년 봄이였을까. 한창 독립출판물에 빠져 독립서점이 발달한 대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정도 가정집 에어비엔비 숙소에 묵었다. 그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갤러리 같은 숙소의 인테리어 때문이였다. 화려하기 보단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들이었는데 알고보니 숙소의 호스트가 화가였다. 그의 화풍은 좀 특이했다. 주로 인물작품이었고 어디선가 본듯한 화풍이었다. 벌써 4년이 흘렀음에도 인상깊던 호스트의 집과 그의 독특한 그림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최근에 그의 그림이 어떤 화가의 작품과 닮았는지 알게 되었다. 얼굴과 코가 길쭉하고 눈동자가 없는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인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다.
내가 모딜리아니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어느 한 소설 작품이다. 작년 즈음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이라는 강렬한 소설을 읽었다. 예순 둘의 교수와 스물넷 제자의 원초적 사랑이야긴데 이야기의 후반부에 스물네살 제자인 콘수엘라가 예순 둘의 교수 케페시에게 보낸 그림엽서를 보낸다. 그 그립엽서에 바로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가 그려져 있다. 케페시는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를 보고 콘수엘라를 연상한다. 육감적이고 본능적인 스물네살 여제자의 육체를 묘사한다. 70을 바라보는 그가 죽음을 맞이며 흠뻑 사랑에 빠져버린 그것에 말이다.
이 그림은 201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1972억원에 낙찰된 세계 2위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생을 마감한 후, 100년이 흐른 뒤에 작품값은 1972억원이 되었다. 21세기 최고의 작품을 남긴 모딜리아니의 인생은 어땠을까 봤더니 그의 인생은 지독한 사랑을 빼놓고는 논할 수가 없었다. 우선 그의 청년기는 병약한 체질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식높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피렌체 등 이태리에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다가 1906년 파리로 이주했고 '파리파'로 불리며 내로라하는 거장 피카소등과 교류했다. 그가 파리에서 피카소를 만난일도 역사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운명의 사건이 파리에서 일어난다.
1917년 봄,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모딜리아니는 잔 에뷔테른을 만난다. 그의 시그니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쓴 여인이 바로 그녀다.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흔히 말하는 나쁜남자였다. 화가계에서 가장 잘 생겼다고 불리는 모딜리아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를 바꿔 만났고 그야말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런 그에게 잔 에뷔테른은 특별한 여자였다고 한다. 14살 차이가 나는 둘은 첫눈에 반해 불타는 사랑을 했는데 잔의 가족은 끝까지 이 병약하고 가난한 모딜리아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잔은 가족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의 도움으로 열게된 전시회는 그의 작품이 너무나 선정적이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강제철거를 당했고 주위 사람들은 다 떠났으며 '누드 화가'라는 오명에 그의 작품은 헐값에 팔렸다. 이후로 그는 술과 마약에 의존해 성격은 난폭해졌다. 하지만 잔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불안에서 나오는 그의 연약함을 감싸안았고 빛을 보지 못하는 그의 재능도 품었다. 그리고 끝까지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끌어주었다.
그들의 생활은 차츰 나아지는 듯 했으나 1920년 둘째임샌 8개월차였던 잔을 두고 모딜리아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스무살을 막 넘긴 잔은 모딜리아니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뱃속에 아이를 간직한 채 그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프리카 예술의 영향을 받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이었다. 특히 아몬드같은 눈은 눈동자가 없었는데 잔은 왜 눈동자가 없으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그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에는 정말 그녀의 눈동자를 그려넣는다. 모딜리아니를 신화로 만든 배경은 잔 에뷔테른인 것 같다. 그 둘의 지독한 사랑이 모딜리아니를 21세기 최고의 화가로 만든게 아닐까. 그의 작품도 가치가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다시 찾아보기 힘든 두 인간의 사랑이 모딜리아니의 삶을 완성했다.
#화가#모딜리아니#필립로스#누워있느나부#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