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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각각의 빛 Oct 24. 2023

소녀상이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 씌어준 모자와 스카프 덕분에 한결 따뜻해진 소녀상과 내 마음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소녀상. / 벤치에 앉아서 스케치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나는 추위를 느끼면 마음도 조금 쓸쓸해지는 타입이다.

4계절이 있고 365일 중 추운 날이 절반이나 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나의 몸과 마음이 추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추운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집에 콕 박혀서 전업 프리랜서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는 소녀상이 있다.

사시사철 그 자리에 묵묵히 한 곳을 응시하는 소녀상이 있다.

당연하다 동상이니까.

근데 나는 그게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말동무도 없이 혼자라 외로울 거 같고 추울 것도 같고 더울 것도 같다. 그래도 예쁜 공원 한가운데에 있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니 그리 외롭진 않겠지 싶었다…



오늘은 그리 춥지도 않았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해 햇빛도 황금빛인데 소녀상은 뭔가 쓸쓸해 보였다.

공원에 간단한 산책 겸 스케치를 하러 나온 참이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공책을 펴고 소녀상을 그렸다.


소녀상은 내 생각보다 너무 앳되었다.

단발머리의 앳된 얼굴, 작은 체구, 꽉 진 작은 주먹, 바닥에 닿지 않아 반쯤 떠 있는 발

역사적 비극을 기리기 위해 만든 소녀상. 그 비극을 오롯이 감당했어야 할 그 시절 작은 소녀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아직 다 해결되지 않은 게 다시 화가 났다. 옆 나라 정치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무슨 세상 종말 선언인 듯 매번 꺼렸다.

답답한 마음은 빨리 걷어내고 그냥 소녀상과 그 상처받은 영혼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소녀상의 얼굴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표정이지만 묘하다. 마치 모나리자 같이.

아주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니면 미묘하게 슬픈듯한 표정

그래서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그렸다.

아무 걱정 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미소 짓는 앳된 소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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