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홀로 서겠다

by 쑨 Seun


늦은 나이라도
취업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나는 37살컴퓨터그래픽을 배워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물론 특별한 경력도 없는데 손꼽히는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바로 고연봉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지에 맞게 준비하면 어디든 일할 자리는 찾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을 유지할 지속 가능한 돈이 있어야 한다. 언젠간 나만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작자로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가 오겠지만 우선 직업을 구해 일해며 돈을 벌었다.








세금내는 국민되기


보통의 취업

1990년대엔 대학진학률이 33%정도 됐다. 가령 세쌍둥이가 있으면 한 명만 대학을 보내고 두 명은 취업하거나 결혼하는 시대였다. 21세기부터는 대학진학율이 급격히 상승해 70%대가 된다. 그 세쌍둥이네가 조금 넉넉해졌는지, 아님 무리를 해서라도 진학을 시켰는지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한 명 더 대학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04학번. 나 또한 누구나 대학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다들 대학을 왜 갈까? 나는 대학은 커녕 의욕없이 고1을 보내고 고2가 됐다. 친구가 좋아져 학교 다니기 싫지 않았는데, 다들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고 문득 겁이 났다. 졸업해도 좋은 관계가 유지 될 수 있을까? 나는 대학을 안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 고2 여름이 되서야 모의고사 점수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수학학원도 다니고, 2000년부터 메가스터디가 부흥시킨 인터넷 강의로 사탐과 과탐을 대비했다. 어찌저찌 고3. 수능을 거쳐 대학원서를 썼다.


이과였고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학문의 기초인 수학을 전공으로 골랐다. 우리반에 10명은 이화여대를 갔고 10명은 그 외 인서울대학에 갔으며 10명은 재수를 했다. SKY에 들어가지 못하자 아버지가 ‘재수할래?’ 하고 물으셨지만 입시는 지긋지긋했다. 이화여대는 합격했지만 고등학교가 계속되는 것 같아 제외하고 그 외 인서울대학을 갔다.


아버지는 '대학은 학문을 하러 가는 곳'이니 진중하게 갈고 닦으라고 말씀하셨다. 딱히 원하던 대학이 아니라서 그런지 동기들과는 간간히만 어울리고 3학년까지 고등학교 다니듯 수업만 듣고 집에 왔다. 4학년이 되서야 속 깊은 얘기도 하게 됐는데, 동기들의 '대학은 취업하려고 왔다'는 말을 듣고 멍해졌다. 아무도 배움 자체를 위해 대학을 다닌 사람이 없었다. 나 홀로 학문정진이라는 뜬구름 잡는 시간을 보낼 동안 동기들은 현실적인 실리를 채웠다. 다들 졸업하고 은행권, 학원강사, 계리사, 대기업으로 제 갈길 찾아 떠났다.


나는 왜 취업을 안했을까? 이제와 솔직하게 말하자면 '취업'이 안 될 거 같았다. 토익점수는 800점도 안나오고 대학활동도 없다. 어학연수는 커녕 취업관련 자격증도 전무. 평범한 외모면서 꾸밀 줄 모르고 부모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잘난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은데 현실은 개뿔도 없어 자신이 없었다. 이것저것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보여 세상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좌절할까 무서웠다. 그리고 그 땐 사익추구는 이기적이고 공익추구는 숭고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회사생활이 안 맞을 것 같아 사기업엔 원서도 안 썼다.


그래도 학문정진은 좀 할 줄 아니 교육대학원을 가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9년의 고시가 실패하면서 결과적으로 교육학석사학위가 돈지랄이 됐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참 유감이다. 고시생을 그만 두니 이젠 백수다. 수학과에 수학교육 석사를 마쳤고 교원자격증도 있으니 임용고시를 보거나 학원으로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더는 책 보는 일은 안하고 싶었다. 그래서 확 다 엎는다.


어차피 한 번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인생.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자고 결심했다.



국민내일배움카드, 기회를 얻다

늦은 나이에 준비하는 취업.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나라에 도움을 구했다. 자료를 뒤적이다가 '취업성공 패키지' 책자를 발견했다. 정부의 취업지원 서비스로 2021년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라고 부른다. 나는 취업성공 패키지(現 국민취업지원제도)와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취업했다. 머리로만 인생을 살다가 몸으로 부딪힌 8개월을 기록에 남긴다.



1. [고용노동부] 고용복지센터 방문하기

처음에는 나라에 무슨 제도가 있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몰랐다. 인터넷에 '취업지원'을 검색하다가 두 가지 제도를 알게 됐고 취업성공 패키지를 신청하려고 가까운 '고용복지센터'를 찾아 방문했다. 고용복지센터는 구직자지원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관련업무와 의료, 생계, 돌봄 서비스 등 복지프로그램을 운용했다. 번호표를 뽑고 관련 창구에서 부를 때를 기다렸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얼어붙은 시기라 센터는 붐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티며 해법을 찾고 있는지 눈으로 봤다.


순번이 돼 상담창구로 갔다. 질문에 대답하며 신청서를 작성했다. 구두로 구직등록을 하면서 나이와 소득수준에 따라 참여유형을 선택한다. 1유형은 취업장려금이나 보조금이 더 많지만 해당되지 않아 2유형에 참여했다. 취업상담기관이 배정되면 연락할 거라는 안내를 받고 내일배움카드를 발급 받으러 갔다.



2. [신한은행 또는 NH은행] 내일배움카드 발급받기

주변 NH은행에 가서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았다.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계좌개설이 가능했고 신한은행에서도 신청할 수 있는데 그 외 은행은 안된다.



3. [전문 취업상담기관] 취업상담 참여하기

일주일 후에 취업상담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예약된 날짜에 방문해 취업상담을 받았다. HRD-Net 앱을 받아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고 워크넷에서 직업심리검사와 지정된 동영상강의를 들으라는 숙제를 받았다.

*요즘은 HRD-Net과 워크넷이 모두 고용24로 통합되어 올인원으로 처리한다.



4. [교육훈련기관] 교육훈련과정 이수하기

광고컨텐츠 영상제작 과정을 거쳐 취업하기로 결심했다. HRD-Net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는 학원을 찾았다. 위치도 알아볼 겸 일부러 직접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학원마다 준비된 훈련탐색결과표를 주며 훈련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 내용과 기간, 비용 및 수료 후 취업가능한 분야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물론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인원 제한이 있어서 면접을 보는 등 선발과정을 겪었다. 만일 떨어지면 다음 차수에 신청 하거나 다른 학원으로 가면 된다.


교육훈련기관의 훈련탐색결과표와 안내자료


참여하고 싶은 과정은 훈련비가 5,296,350원이었다. 내일배움카드로 300만원까지, 일부과정은 훈련비가 300만원이 넘더라도 1회에 한해 전액지원 받을 수 있어서 나랏돈으로 훈련 과정에 입문했다. 출석일수와 평가기준에 부합하면 십여만원의 훈련장려금도 나온다.


코로나 시기가 끝난 요즘이라면 컴퓨터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겠지만 2020년 말에는 코로나 시기라 집합교육은 금지됐다. 동 과정을 듣는 28명은 사전설명회와 수료식, 딱 2번의 공식적 만남 외엔 줌(ZOOM)으로 6개월을 함께했다. 출석하고 수업듣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때까지 온라인인 듯 오프라인 같은 온라인 수업을 이수하고 학원에서 제공하는 취업상담을 받았다.



5. [취업 상담기관 & 교육훈련기관] 취업하기

2020년 12월 9일에서 2021년 5월 14일까지 교육훈련과정을 받았다. 고용노동부에서 배정받은 취업상담기관에서는 삼개월에 한 번씩 훈련진행여부를 전화로 확인했고, 교육과정이 끝날 무렵에는 관련 분야의 공고를 찾아서 링크를 전달했다.


훈련교육 수료증


뿐만 아니라 교육훈련기관 내부적으로도 취업지원을 진행했다. 포트폴리오 시사를 함께 했고, 전문가가 지원서를 검토해줬다. 개인적으로 전자출판기능사와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원서사진도 새로 찍었다. 누군가가 함께 취업을 도와줘서 든든했다. 수료 2주 전부터 선생님은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대로 원서를 쓰게 시켰는데 나는 첫 번째로 연락을 받고 면접 본 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수료되기 일주일 전에 취업이 완료됐다.



6. [취업 상담기관 & 교육훈련기관] 프로그램 종료

입사하면 취업성공 패키지가 종료된다. 마지막으로 서류제출을 하면 되는데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를 학원과 취업상담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취업상담기관과 교육훈련기관은 구직자 취업률이 실적이라서 증빙서류를 반드시 제출하길 요청하고, 제출해야 프로그램 종료를 공식화 할 수 있다.


취업상담기관은 취업 후 6개월까지 사후관리를 한다. 솔직히 첫 취업한 홈쇼핑 스튜디오는 4개월을 다니고 나왔다. 한달 쉬고 바로 광고대행사로 이직을 해서 기관에 불이익한 결과를 주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라의 도움을 받고 세금내는 국민이 됐다.






야! 너두, 사회생활 할 수 있어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정확히 알았다.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 자기효능감, 자주성 등 자(自)씨 성을 가진 심리적 자원은 책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역량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을 하면서 시간과 함께 누적해야 하는 것이다. 역량보다 과하게 넘치는 일은 좌절을 주고, 너무 쉬운 일은 자만하게 만든다. 역량보다 30%정도 도전적인 일에서 성과를 쌓으면서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런 작은 성공이 쌓여서 긍지있는 인생이 되간다.


영상 제작은 나에게 희망을 줬다. 공무원 시험은 일년에 한번 성과를 확인하는데, 그마저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굉장히 쓸모 없는 인간이 된 듯 자괴감이 든다. 반면 영상은 바로 피드백이 나오고 배울수록 퀄리티와 자기효능감이 올라간다. 물론 배웠다고 누구나 영상을 잘 만든 건 아니었다. 포기자도 있고 포트폴리오를 기간 내에 완성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보니 내 감각이 괜찮은 편이라고 확인하면서 은근 자심감도 생겼다.


또 사회에 나와서 정확히 알았다. 엄청난 스펙과 자격을 갖춰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학시절 스펙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큰 오해다. 학력, 외모, 자산, 성격, 집안 등 완벽한 인간은 정말, 정엉말 극소수다. 사회생활은 한두 가지의 강점을 어필하고 약점은 적당히 숨기면서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 과정이었다. 토익이 부족해도 일에 따라서 지구력 혹은 평범한 외모를 강조해서 입사할 수도 있었다. 그 때 갖춰진 수준에서 일할 자리를 찾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됐는데 겁먹었다.


그리고 사회초년생이 잘해봤자 얼마나 잘 하겠는가? 사회생활은 팀으로 협력하며 성과를 공유하는 과정인데 잘해야 된다고만 생각해서 늘 쫄아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았는데. 사회생활에 필요한 역량은 그저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할 줄 모르는 것'을 '정확히 분별할 메타인지'다. 모르면 모른다고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들이 갖지 않은 재주는 적극적으로 나누며 그렇게 같이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반성되는 지점은 나중에 바꿔도 되니까 우선 '이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못한 점이다. 한번 결정하면 바꾸면 안된다고 강박을 가지니 아무것도 못하고, 곁눈질만 심했

다. 취업난이 심하고, 경기가 악화되고, 세계정세가 휘청인다는 뉴스는 남의 얘기다. 그저 나는 '딱 그것'이 하고 싶은데 '할 만하다 아니다'만 단순하게 확인하면서 살면 뭐라도 된다.


다 사람사는 세상이다.








돈 버는 일. 누구나 하고 산다. 나는 그 당연한 걸, 부끄럽게도 서른 일곱이 되서야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누구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받지 않고 모든 일을 혈혈단신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려우면 도와달라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지원을 끌어내는 것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집스런 지난 시간을 반성한다.


나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취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세금내는 국민이 되서 차차 갚자.' 아직은 미약하지만 스스로 한 걸음을 뗀 나를 격려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보단 더 나아져 '절망의 숲에서 길 잃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