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오래된 꿈

by 쑨 Seun



살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일은 뭐였을까?



그저 재밌어서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취미든 직업이든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게 좋다. 살다가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 그 일이 ‘삶’을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랬다. 인생이 망해서 다 포기 하고 싶던 그 순간, 나는 예술을 하기로 했다.








미술시간을 좋아하던 아이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했다. 우등생이라면 응당 국영수 위주로 고득점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난 조금 다른 부류였다. 영어와 수학은 간신히 85점을 넘겨 체면치레하고 미술, 체육, 가정, 기술 등 실기 과목에서 부족한 점수를 채웠다.


게다가 특별활동으로 선택한 미술반이 너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 미술실에 모여 사부작사부작 전등도 만들고, 학내 전시회 준비도 하고, 선생님을 따라서 홍대도 가보고. 모든 것이 즐거웠다. 예술가처럼 근사한 친구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미술을 배워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야말로 '평범이'였다. 형태, 음영, 색과 같은 기본기도 없었고 주변에 미감을 활용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다. 반면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은 여지없이 어릴 적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다. 난 중1 서울로 전학오기 전까지 미술학원을 본 적도 없었는데.


그리고 미술반에는 천재같은 애들도 여럿 있었다. 그 중 '소담'이가 기억난다. 이름처럼 다정했다. 예고입시를 한 달 앞둔 그녀에게 '커서 홍익대에 갈 거냐'고 물었다. 홍익대는 미술 선생님의 출신 대학이었고, 그 분야 최고라 들었기에 내 입장에선 '대단한 친구에게 던진 엄청난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서울대 미대에 갈 거라서 지금은 수학과 영어 공부를 더 많이 한다'고 했다. 충격이다. 포부도 대단한데 대학진학도 준비하고 있다니! 소담이는 입시 한 달 전 수채화에서 아크릴화로 종목을 바꿨음에도 선화예고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졸업할 즈음엔 엄마 일을 돕는다며 바빴다. 부케를 만드는데, 한 다발에 백만원씩이나 한다고 했다. 주눅 들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당시 나에게 미술은 천재성과 자본이 받쳐줘야 입문할 수 있는 별세계의 분야였다.


사실 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가끔 예술하는 꿈을 꿨다. 그렇지만 하고 싶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어차피 우리집에서는 못 할거였다. 언니는 중1때 EBS콩쿨에서 전국 2등을 했다.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배운 곡으로, 드레스가 없어서 교복을 입고 단상에 올랐지만 빛나는 재능은 세상이 알아봤다.


피아노학원 선생님도 전공을 할 것을 권유했고 언니도 원했지만 '포기 당했다'. 우리집은 지원할 형편이 안되니까 헛바람들지 말라고 했다. 언니는 손재주가 좋아서 그런지 그 후로 미용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천한 일' 할 생각 말고 공부나 하라며 화를 냈다.


어머니는 단호하고, 아버지는 무서웠다. 물어보나 마나 나의 미술도 같을 거였다. 재능이 있어도 못하는 집안에서, 그냥 좋아하니까 미술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우리집은 너무 가난해서 그리고 애매한 재능으로 무시 당하기 싫어서 스스로를 꿈을 꺽었다. 그 후론 미술은 처다보지도 않았다.






예술, 그 비슷한 것을 하다


가정형편이 안 됐고, 천재같은 재능이 없어서 예술을 '못했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다. 열정이 있다면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안했지만' 결국엔 돌고돌아 창작, 영상디자인, 예술 그 비슷한 걸 한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관련 학교도 나오고 커리어를 쌓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땐 만화도 종종 그렸는데 어쩌면 웹툰작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연필이나 붓펜으로 유행하는 캐릭터를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정도였지만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유희열의 FM음악도시가 끝날 때까지 그렸다 지웠다. 밤을 꼬박 새도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예술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못했고 은퇴 후 취미생활로 할 계획이었다.

애니메이션.png 중학생 때 그리던 그림들


그러나 예술, 그 비슷한 것을 20년은 앞당겨 한다.

나는 모션그래픽디자이너가 됐다.


9년간 도전한 고시를 포기했을 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망한 인생, 사회에 나가기 무서워 방안에만 있다가 죽기 전에 그림이나 그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미술은 부담스럽고 컴퓨터 그래픽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받아주는 학원을 찾다가 '광고영상컨텐츠제작' 과정에 운 좋게 입문했다. 6개월간 포토샵에 일러스트, 에프터이펙트와 프리미어, 시포디까지 배우고 취업했다.



모방도 재주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머릿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와 색이 막 펼쳐지고 밤낮없이 뭔가를 표현하고 싶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류는 아니다. 그래서 예술할 깜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레퍼런스를 참고해 쓸만한 그림체 만드는 재주는 있었다.


선생님은 학원에서 취업률이 제일 좋았다. 그 분의 전략은 포트폴리오로 모방작을 만들게 한 것. 레퍼런스로 삼을 원작을 고르는 데만 관여했다. 취업시장에서 안 먹힐 레퍼런스를 골라오면 다시 찾아오라 시켰다. 그러면서 많은 작가의 작품을 본다. 세상에 천재가, 예술가가 이토록 많다니! 그렇게 안목도 키우고 레퍼런스를 컨펌 받아 포트폴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포토샵 포트폴리오.png 포토샵 포트폴리오: 원본(좌)과 모방본(우)
일러스트포트폴리오.png 일러스트 포트폴리오: 원본(좌)과 모방본(우)


포토샵 일주일 배우고, 일주일 간 합성 작업물을 만들었다. 일러스트를 일주일 배우고, 열흘간 아트 작업물을 따라 그렸다. 에프터이펙트를 한 달 배우고, 한 달 동안 모션그래픽 영상 세 개를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모방작을 그리던 특기가 발휘됐다. 선생님도 현업자 속도라며 인정했다.


디자이너는 고객의 요구를 납기 내에 작업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일리있는 학습이다. 취업까지 했으니 효과적인 전략도 맞다. 포트폴리오가 준비된 후엔, 내가 만들었다며 여기저기 보여주고 우쭐해졌다. 인생 실패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았는데 예술가 된 듯 자기효능감이 올라갔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왜냐면 모방, 이건 그냥 도둑질이니까.








나는 원작자가 되고 싶다. 누가 봐도 '그거 그 사람이 만들거 아니야?'라는 장르가 되고 싶다. 모방을 잘하는 재주 덕에 예술 비슷한 것을 한다. 그렇지만 모방은 어떤 예술의 시작일 뿐. 그렇게 과거에서 독립하고 나다움으로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