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하나 뉠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까?
태어났을 때부터 살 곳이 있었다. 물론 부모가 돈 들여 마련한 공간인데 누구나 살 집은 있는 거라고 오해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보호자에게 의탁해 입고, 먹고, 잤지만 독립 후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자본주의에 공짜는 없다. 매일 음식과 철마다 입을 옷 사듯, 집도 구입해야 하는데 비싸서 우선 빌려 쓰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매매 혹은 임대다. 매매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쳐 '평생 살아도 되는 내 공간'을 만드는 거고, 임대는 계약을 맺어 '일정기간 동안 남의 집을 빌려 사는 것'이다. 딱 원하는 조건의 집을 산다면 삶이 안정될 것 같다. 하지만 난 지금 벌어 놓은 현금이 없고, 제1금융권의 신용대출로는 불가해서 임대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필요한 공간은 개인 작업실이면서 살 집이라서 생활 옵션이 갖춰져 있어야 했다. 공간이 넓을수록 좋지만 혼자 살 것이기에 넓은 원룸 혹은 투룸이면 됐다. 밤에도 주변이 너무 어둡지 않으면 좋겠고 유흥가와 너무 가깝지 않기를 바랐다. 오피스텔이든 빌라든 상관없지만 빌라를 살거라면 저층보다는 고층을 선호한다. 상태가 깨끗하면 좋지만 아니면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셀프 인테리어를 할 예정이라 공간의 크기와 위치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강남구에서 조건이 맞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다방, 직방, Npay를 깔고 나와 있는 전세와 월세의 매물을 살폈다. 전세로10평 정도의 원룸 혹은 투룸을 구하려면 보증금 3억은 필요했다. 대출 받는다면 최근 금리로 연 4%. 매년 1200만원, 월로 따지면 100만원씩 이자를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연봉이 낮은 나에게 은행이 대출승인을 해 줄리 없고, 대출이 된대로 내 집이 되지 않을 전세에 월100만원을 쓰는 건 멍청하다.
게다가 요즘은 깡통주택으로 인한 전세사기가 기승이니, 혹시 나중에 보증금 3억을 돌려받지 못하면 빈곤층에서 극빈층으로 한방에 나락갈지도. 그래서 전세를 선택지에서 뺐다. 그리고 월세를 살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세는 급여의 30%수준으로 정하라던데 그렇다면 세후 200만원 버는 나에게 적당한 월세액은 60만원이다. 문제는 강남구엔 원하는 조건을 갖춘 60만원짜리 월세방은 없다.
대신 직장인 월세 세액공제를 고려해 75만원이라는 기준을 잡았다. 납부한 월세액의 17%를 세액공제 받는다고 계산했을 때의 값이다. 즉, 월세액*0.83=60이 되는 대략의 값을 잡았더니 73이라 조금 더 써서 75를 잡았다. 실제 딱 그 가격의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물론 관리비 6만원을 더 내야 해서 매달 81만원이 들지만 감당할 수 있다.
집을 찾는 시기에 조건과 가격에 가까운 집을 두 군데 찾았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방을 보러 갔다. 처음 본 집이 딱 좋아 집주인이 이 건물로 임대사업을 오래했는지 물었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른 집도 볼까하다가 당일 바로 계약의사를 전달하고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부동산도 인연이라 딱 맞는 조건의 집을 발견하면 뒤도 안보고 잡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부동산에서 집주인을 만났다. 만일 대리인이 나온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나는 집주인과 직접 만나 서로 신분증 확인 후 계약서를 작성했다.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라, 그 후로 입주일을 조정하고 특약사항을 확인한 후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집을 구할 땐 기타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중개인에게 중개료를 줘야 하고 이사비용도 든다. 중개료로 30만원을 보냈고 짐은 컴퓨터와 기본 집기, 책, 옷 밖에 없어 부모에게 부탁해 차로 2번 이동했다. 그 덕에 견적상 35만원 나오는 이사비용을 아꼈다. 그 외에도 은행의 이체 한도가 충분한지 확인해야 한다. 은행에 방문해서 이체 한도를 늘려야 하는데 미리 가질 못해 두 번에 나눠서 입금했다.
부동산 계약을 마치면 동사무소에 계약서와 신분증을 들고 가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는다. 나중에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임대차계약증서의 주소와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일치해야하기 때문에 전입신고는 필수다. 그렇게 나는 공간과 정서 그리고 서류까지 온전히 본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1인 가구가 됐다.
그렇게 살 공간을 마련했다. 계약 첫 2년은 나를 연구하는 시간으로 보냈고, 2025년에 갱신계약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중이다. 2년 후엔 그 때에 필요에 더 나은 공간으로 이동할 거다.
월세방을 구하는데도 전세처럼 보증금이 필요하다. 물론 보증금이 없는 집도 있는데 그러면 월세액이 더 비싸다. 기록을 정리하다 집을 고치고 부모에게 전달한 보고서 2개를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월세 보증금은 두 개의 보고서에서 나왔다. 정확히는 2018년도에 집 2채를 고치고 부모에게 1700만원을 받았다.
처음엔 돈 받고 보수하기로 한 건 아니었다. 2017년에 윗집 보일러가 깨져 엄청난 누수가 있었다. 그 물이 우리집으로 흘러들어 벽지에 물 주머니가 여기저기 생기고 찢어져 엉망이 됐다. 일년 지나 물기는 말랐지만 벽지 안 쪽으론 곰팡이가 한 가득. 부모는 서울집 상태를 아시긴 했지만 은퇴 후 시골로 가셔서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만일 서울에 살았어도 걸레로 곰팡이 닦고 찢어진 벽지는 테이프 붙여 그냥 지냈을 거다. 두 분은 시골집을 직접 짓고 고쳐서 사는데 서울집에 도배하자고 말하기 어려웠다.
2018년 모든 시험에 다 떨어지니 싹 다 갈아엎고 벗어나고 싶었다. 새카만 벽도 거슬리고, 나 사는 꼴이 너무 싫다. 어머니와 통화 하면서 '2년 후엔 사회에 나가겠다'고 말씀드리며 '쉬는 겸해서 벽지도 바꾸고, 집을 좀 고쳐도 되는지' 물었다. 그러라는 승락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유투브에는 도배법, 타일붙이기, 장판깔기, 벽지페이팅, 걸레받이 교체 등 셀프 인테리어 정보가 흘러 넘쳤다. 게다가 인테리어에 필요한 모든 부자재는 온라인 주문이 가능했다. 풀바른 벽지와 브랜드 장판, 기능성 페인트, 접착식 타일과 미장용품, 실린콘 건, 공구 등. 유투브로 도배법을 배우고 실시간으로 부자재 주문을 넣었다. 배송되는 이틀간 벽에 밑작업을 해 놓고 풀바른 벽지가 오면 바로 도배하는 식으로 보수공사를 했다.
서울집은 방 3개와 주방, 거실 그리고 베란다를 고쳤다. 주방 싱크대와 화장실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뒀다. 싱크나 수전, 변기 교체는 대공사였고, 타일 붙이는 작업은 망하면 되돌리기가 어려워서 후에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가장 먼저 고치기 시작한 곳은 내가 쓰는 작은방. 곰팡이 핀 벽과 맞닿은 면의 벽지를 다 뜯었다. 지저분하게 붙은 벽지조각은 물에 불려 수세미로 문질러 뗐다. 곰팡이 핀 곳도 비눗물로 다 딱고 락스를 뿌려 말렸다. 오래된 노란 싸구려 장판도 들어 냈다. 전문업자가 아니라서 이틀이나 걸렸지만 곰팡이를 지우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다이소에서 천원주고 산 시멘트로 벽에 금 간 부분도 메웠다.
벽지는 천정 높이와 벽 길이를 재서 필요한 만큼만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초배지를 붙이고 최종벽지를 붙이는데 나는 초배지는 생략하고 시멘트 벽에 바로 풀바른 실크 벽지를 꼼꼼히 붙였다. 풀바른 벽지는 도배용 풀이 다 발려 있어서 위치를 잘 잡고 밀대로 기포를 밀어 빼며 붙이기만 하면 끝난다. 조금 우그러진 부분도 마르면서 펴진다. 대신 이음새는 투명 실리콘을 발라 떨어지지 않게 마감했다. 그 외에 멀쩡한 벽과 천장은 크림화이트 페인트를 발랐다. 한번은 물을 약간 타서 얇게 바르고, 마르면 원액으로 한번 더 진하게 발랐다. 그리고 큰 창이 있는데 90년대에 유행하던 유리창 간살 문양이 촌스러웠다. 그 장식적인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모던하고 깔끔한 창 디자인으로 바꿨다. 창 나무틀과 방문도 페인팅해서 방 컬러에 통일감을 주니 그럴싸 했다.
그 후엔 장마로 페인트가 들뜬 낡은 베란다를 고쳤다. 뒤틀어진 나무 걸레받이를 뜯어내고 플라스틱 나무결 걸레받이로 갈아 끼웠다. 페인트가 벗겨진 천정과 벽은 사포로 갈아 매끈하게 만들고 곰팡이 결로방지 페인트를 여러번 덧발랐다. 바닥은 접착식 타일을 붙여 마감했다. 큰방과 동생이 쓰는 작은방, 그리고 거실은 벽지가 바랜 것 외엔 깨끗해서 물타지 않은 원액으로 벽지 페인팅을 했다. 부드러운 크림 화이트로 집이 깨끗해졌다.
힘든데 재밌었다. 거대한 선물상자를 예쁜 포장지로 장식하는 기분이랄까! 각 방마다 도배와 벽지페인팅을 하고 나서 장판을 갈 때 가장 만족했다. 얇고 오래된 노란 장판대신 방에는 원목무늬로, 거실과 복도엔 대리석무늬로 장판을 깔았더니 집이 확 고급스러워졌다.
사실 전문업자가 했으면 2주면 됐을 작업이지만 나 혼자서 이 방에 있는 물건을 저방으로 옮기고, 보수가 끝나면 저방에서 다른방으로 옮겨가며 일했기에 한 달 남짓 걸렸다. 그리고 노가다를 하루에 12시간씩 하니 손이 퉁퉁 부어 주먹이 쥐어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 공부한다고 내일 성과가 바로 잡히지 않는 수험생활과 달리 애쓴 결과가 바로 보이는 인테리어 작업은 성취감이 엄청났다. 팡팡 터지는 도파민에 취해 피로는 문제가 아녔다. 주방 선반을 대리석 시트지로 시공하고, 오래된 전등을 LED로 교체한 후에야 서울집 셀프 인테리어가 끝났다.
9월 말 추석에 부모님이 서울로 왔다. 셀프 인테리어 결산보고서를 작성해 전달하는데 어머니는 '와! 이야!' 감탄을 멈추지 않았고 아버지는 '세상에 이렇게 집을 고쳐주는 자식은 어디에도 없다'고 감동했다. 석사학위 논문을 드리고 졸업할 적에도 시건방 떨지 말라고 욕 하던 아버지인데, 눈빛에 기쁨 가득 담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10월 말. 천안집에 한 달간 머물며 두 번째 셀프 인테리어를 한다.
서울집의 성공적인 보수공사가 부모에게 영향을 미쳤다. 살고 계신 시골집에 고물과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창고처럼 쓰던 천안집도 짐을 싹 비우고 어머니가 직접 인테리어를 시도해보신 거다. 그러나 쉽지 않으셨나보다. 천안집에 악보를 찾으러 갔다가 뜯다만 벽지가 방치된 방을 봤다.
아이고, 도배가 얼마나 힘든데, 놀고 있는 나한테 시키지. 마음이 짠하고 내 허리가 아픈 기분이었다. 어머니께 전화해 천안집도 셀프 인테리어를 해보겠다고 말씀드리니 좋아하셨다. 천장이 높은 집이라며 아예 사다리와 빠루까지 빌려주고 가셨다.
천안집은 서울집에 비해 크다. 베란다도 주방과 거실 쪽에 2군데가 있어서 작업량이 많았다. 그래도 한 번 도배며 페인팅, 장판갈이를 해봐서 그런가 할 만했다. 서울과 비슷한 작업이었고 특이점은 없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작업을 마치고 부모를 모셨다. 깨끗한 벽과 새장판 깔린 집을 보며 많이 좋아했다. 그리고 두 분께 말씀드렸다.
"모든 힘들었던 것은 다 정리하고 이 집에 좋은 일만 있으라고 기도하면서 고쳤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천안집은 다섯식구가 완전체로 산 유일한 집이다. 그러나 6년 간 좋은 추억은 없다.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온 몸이 피멍이 들게 매질을 했다. 혹독한 훈육과 왜곡된 사랑으로 나는 말 잘 듣는 우등생으로 컸지만 편안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불안하고 겁먹은 아이의 절규'가 스며있는 벽지를 뜯어내고, 눈물에 젖은 방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그건 온 마음 다해 상처에 약을 바르고 아픔을 감싸안아 새살을 돋우는 회복의 과정이었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자식이라도 공짜로 이런 선물을 받으면 안된다며 값을 치르겠다고 하셨다. 2018년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결산하는 해였나 보다. 어머니는 양육에 들어간 돈을 기록한 가계부와 통장, 그리고 집 2채를 고친 값으로 1700만원을 주셨다. 목돈을 받아 본 적이 처음이라 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환하게 웃을 줄 나도 몰랐다.
그리고 중요한 걸 깨달았다. 사람이 돈을 쥐고 있어야 안정감과 자신감이 생긴다. 한 푼 벌어 모은 돈이 없었는데 돈 천이라도 내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부자 된 듯, 어깨가 훅 펴졌다. 집도 고치고 나도 고쳤다. 효도하면서 돈도 벌고, 참 잘했다.
이제서야 한 몸 뉠 공간을 마련하고 숨쉬기가 편해졌다. 직업을 구해 돈을 벌고, 살 공간을 마련하며,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경제적 독립의 기본은 했다.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마흔에 그 시작을 했지만 기쁘다. 스스로 걸음마를 뗀 아이지만 다음 걸음을 기대한다. 왠지 금새 댄스브레이크도 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좋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