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을 위해 20대엔
뭘 했어야 했을까?
전공이 수학이었지만 한번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다. 아니, 그냥 돈 번 경험이 없다. 20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아무도 너에게 큰 기대가 없으니, 쫄지말고 아무거나 해서라도 돈을 벌어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필요한 것 사 쓰고 멋도 부리고, 돈 모아 여행도 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엔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다더니 그때 못 배우고 지나갔던 사회공부를 늦게서야 마스터한다. 나는 40대에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2024년은 대략 10년정도 사회생활하면서 겪어야 했던 일을 압축적으로 몰아서 학습한 해였다. 퇴사, 임금체불, 고소고발 및 민사소송, 일용직 노동자,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 직장내괴롭힘 등 늦은 사회생활을 만회하듯 압축해서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경험하고 치워냈다. 그래도 맘스터치에서 했던 아르바이트는 조금은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퇴사를 하고 집 앞 슈퍼푸드 전문점에서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두 달 만에 임금체불을 겪고 그만뒀다. 일자리를 구하며 이번엔 체불이 없을 혹은 발생해도 확실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공고만 살폈다. 당근에서 알바공고를 보다가 맘스터치에 지원서를 보냈다. 노브랜드, 버거킹, 메가커피도 구인 중이었는데 그냥 맘스터치의 통살 가득한 햄버거가 너무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골랐다.
강남대로엔 맘스터치가 2군데다. 강남구에 가맹점 하나와 길 건너 서초구에 LAB 직영점이 있다. 프랜차이즈라도 가맹점은 본사로부터 상호와 상표, 원자재를 제공받는 가맹계약으로 운영되는 일반 사업자다. 임금을 보장 받고 싶으면 본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을 가야 했는데 뭣도 모르고 지원서를 넣은 데가 본사 직영이었다. 블루아카이브 이벤트 시즌 동안엔 본사 직원들이 파견 나와 업무지원하는 것도 봤으니 운이 좋았다.
마감조로 주5일 7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많이 일하려던 건 아니었다. 매니저와 면접 볼 때는 저녁 8시부터 마감하는 익일 1시 반까지, 5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면서 점장이 근무시간을 저녁 6시부터 익일 1시 반으로 적었다. 추후에 조정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선 해보기로 했다. 사전교육 없이 일사천리로 입사했는데 일주일만에 입사가 왜 그리 쉬웠는지 이해했다. 일이 힘들어서 퇴사자가 너무 많다. 일할 의사가 있으면 우선 시켜보는 점장 덕에 나는 맘스비가 됐다.
일은 하면서 배웠다. 첫 달은 주방에서 토마토를 손질하고, 양상추를 세척하고, 튀김반죽을 만드는 등 시키는대로 했다. 설거지와 청소 위주로 했고 버거맨들 뒤에서 사이드 메뉴를 담당했다. 동료들과 인사는 하고 다녔지만 별 대화없이 조용히 일만 했다. 두 달째 되면서 튀김기와 그릴 등 조리도구를 마감하는 방법도 익히고 치킨도 튀기고 버거도 한 번씩 싸면서 메인 메뉴를 배웠다. 세 달째엔 가을학기가 시작되어 메인 버거맨들이 대학으로 복학하고 알바생 여럿이 한번에 빠져나갔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종종 버거대에서 메인으로 일하기도 하고 바쁘면 포스기에서 앱주문 승인도 하면서 업무전반을 알아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뭘 얻었을까?
일한 시간도 적지 않고 야간근로라 세후 230만원에서 250만원을 벌었다. 계속 알바를 했어도 사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 테지만 배울 것은 다 배웠단 생각이 드는 순간, 퇴사했다. 20대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느껴야 했던 감각. 재미도 있고, 씁쓸하기도 한 그 감각 속에서 나의 길을 갈 결심이 확실해졌다.
미성년자는 부모의 책임 하에 있으니 경제적 독립의 무게를 잘 모른다. 충동적으로 사건 사고를 일으켜도 처벌 수위가 낮고 보호자가 배상하지만, 성년이 되는 순간부터는 오롯이 자기 책임이다. 그렇기에 20대는 완충지대와 같아 아르바이트든 인턴이든 직접 경험하며 사회의 맛을 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첫 계약서를 쓰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책임감을 배우면서 '나'를 알게 되고 '사람'을 이해한다. 사회의 '규칙'에 관심이 생기고 '경제적 감각'도 성장한다.
물론 돈도 벌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얻는 성취감도 있지만 돈 때문에 엿 같아도 참아야 하는 모멸감,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무딘 평안함을 겪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한다. 나와 점장은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장과 부딪힐 적마다 잽 같은 작은 모멸감이 누적됐다. 말투가 성질을 툭툭 건드렸고 한번은 "느려, 더 빨리해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툭 "그러면 시키지 마요." 라고 응수 했다. 또 한번은 "할 줄 몰라요?" 라고 타박을 하는데 "네, 몰라요." 그랬다. 회사를 다닐 적에는 그런 상황이 있으면 '죄송합니다.'가 먼저 였는데 이건 짤려도 문제 없는 알바라서 부담이 없었나?
내가 그렇게 반응하면 점장도 움찔했다. 알바를 그만 둘까봐 염려하는게 눈에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인사하고 일하다 보니 그의 태도도 부드러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나빠서 딱 때쳐 치울 생각을 했으나 당장 나가야할 돈 생각에 참았다. 그렇게 한 고비 넘기고 제 자리에 있다보니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온다. 2개월을 넘어가면서 매니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 오기 몇 달 전에도 점장과 부점장, 그리고 알바생과 한바탕 난리가 있었다고 들었다. 점장으로 다듬어지는 과정 중이라고 생각하니 그의 툭툭거림에 나도 더는 도발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알바를 하기 전에는 갈등이 생기면 괜찮은 척 하면서 내가 병들거나 관계가 악화되면 손절을 택했는데, 솔직한 표현을 해도 수습할 수 있고 그렇게 상호간 성장기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다. 퇴사하기로 협의한 2주 전부터 신입이 오면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줬다. 점장은 '인계인수 확실히 하시네요.' 하면서도 지적질이 아닌 방식으로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는걸 알게 된 것 같았다. 왜냐고? 신입에게 전과 달리 친절했고 나의 퇴사도 아쉬워 했다.
3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맘스터치인 강남대로LAB 지점은 알바생이 많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오픈과 마감엔 4인이 기본이지만 시간에 따라선 6인에서 12인까지 다양하다. 스쳐간 시절 인연이겠지만 잘 지내는지 궁금한 두 친구가 있다. 두 사람은 사회생활의 태도가 극과 극이었다.
마감조로 주5일 일하면서 거의 매일 본 20살 청년은 성실했다. 매니저가 하라는 일은 토달지 않고 했고 장난과 갈굼의 중간쯤으로 자신을 대하는 알바생 형에게 화가 나도 무례하지 않았다. 늘 지치고 의기소침해 보였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 굳이 묻지는 않았다.
2달간 일만 하다가 휴게시간이 겹쳐서 나란히 앉아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그 친구는 수능 한 달 남겨놓고 업무시간을 줄여달라는 말을 못해서 고민 중이었다. 알바생이 빠져나가서 자기도 쉬면 업장에 피해를 줄까봐 걱정 했다. 나는 무슨 오지랖인지 "근무시간 줄여달라고 해." 라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남 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너 한테 피해를 끼치는 건 괜찮아?"
더 들어보니 이 친구는 부모와의 의견차가 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출했다. 나는 "알고보니 패기있는 자식이네." 하며 가볍게 받았다. 그리고 '뭘 선택하든 네 인생이고 스스로 책임지면 그만이다. 관계는 또 달라질 수 있으니까 쫄지말고 늘 당당하라.' 고 했다. 한 마디 더. "착한 건 아는데 업장에 일할 사람 구하는 건 점장이랑 매니저 문제지, 너가 할 일이 아니야. 신경 꺼." 다음 날 그 친구는 주말 낮에만 일하는 걸로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나는 20대 같은 기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른은 어른인가 보다. 더웠던 여름에 기력이 쇠해져 나 먹으려고 정몰에서 홍삼을 주문하다가 그 친구 것도 한 세트를 샀다. 선물로 주면서 한번 더 오지랖 부렸다. "여기는 나쁜 사람이 없어서 집 나온 거 말해도 괜찮은데, 되도록 아무나한테나 그런 말하지마. 세상에는 생각보다 나쁜 사람도 많아. 그리고 모은 돈, 등록금 할 거잖아. 몫이 정해져서 있는 돈은 있어도 없는 거야. 누가 빌려달라고 해도 안돼." 나는 홍삼도 줬는데 잔소리 한마디 괜찮지 않냐는 너스레를 떨면서 "인생은 기세가 전부다!" 힘내라고 응원했다. 수능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만둬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되돌아보면 그 친구에게 했던 모든 말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기억나는 그 녀석. 주5일 일하면서 주3일 근무가 겹쳤던 23살 청년은 여우였다. 점장이 버거킹에서 일할 때부터 알았고 맘스터치로 오면서 알바생이 급해 불렀던 친구다. 그러나 내 눈엔 이 업장을 위해서 뽑아내야 할 가시같이 보였다.
우선 말하는 톤이 명령조다. 듣기 불편했지만 아는 게 없으니 '네'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자주 보니 가깝다고 생각했던지 내 앞에서 '점장 형'과 친하고 '자기 말은 다 통한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했다. 문제는 점장이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는데 매니저들이 요청한 건 듣지 않았다. 맘스터치와 버거킹을 비교하면서 뭐가 잘못됐고, 뭐가 부족하고, 뭐가 싫고, 자기 말이 맞지 않으냐고 되물으며 끊임없이 불만을 나불거렸다.
그러려니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 친구와 일하면 너무 피곤했다. 나에게 일을 떠 넘겼다. 만일 설거지거리가 생기면 다른 알바생은 직접 식기세척기를 돌려 일을 치우는데 이 친구는 내 앞에 놓고 갔다. 계속 그런 식으로 일은 안하고 친한 매니저 옆에 가서 쫑알거리니 마감이 늦어졌다. 알고보니 일부러 마감시간을 늘여서 야간수당을 더 받으려는 꼼수였다. 삼개월쯤 매니저에게 그 친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알고보니 버거킹 다닐 때도 폐급 매니저로 유명했다고 한다. 시간을 잘 지키고 특별한 손해가 없으니 해고할 수도 없지만, 거쳐간 알바생마다 그 친구를 힘들어했다고 한다. 말해도 듣지 않아 매니저도 고민이 많았다.
문제는 그 다음주 이벤트 기간에 터졌다. 심야 주문량이 폭발하자 그 친구는 "아, 돼지새끼들 왜 시켜먹고 지랄이야." 하고 화를 내며 버거를 쌌다. 듣기도 불쾌한데 또 나에게 일 미루기를 하자 째려봤다. 그리고 들으라고 크게 "더 못 봐주겠네요. 점장한테 문제제기 해야겠어요!" 하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 날은 살짝 눈치를 보더니 다음 날 무단결근을 했다. 없는 인원으로 나 없이 고생하면서 엿 먹으라는 듯. 그 친구는 점장 및 3년을 알고 지낸 모든 알바생에게 그만둔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만약 20대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런 동료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이해하면서 같이 가자. 스치는 인연도 소중하다.' 라며 착한 소리를 했을 거다. 오늘의 나는 그런 '사람 존중할 줄 모르는 교만한 생각'은 안한다.
왜냐고? 누구나 제 몫의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생에 필요한 학습을 하고 독립할 힘을 키운다. 그의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은 학습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아 그의 성장을 방해한다. 내가 더 고생하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 책임전가하지 말라'고 분명히 가르쳐 깨달을 기회를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그리고 솔직해져라. 내가 더 고생하고 이해하는 걸 원하나? 아니, 싫다. 무시당해 기분 나쁘다. 그렇지만 '내 그릇이 더 크니 받아준다'는 모양새를 만들어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참은게 아닐까? 이제는 착한 사람은 그만, 바르게 살고 싶다.
물론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다 안고 가겠다'는 결심은 여전히 내린다. 남에게 친절해도 나에게 나쁘지 않은 경계 내에서, 다 끌어 안아줘도 고마움을 알고 악용하지 않을 사람에게만, 그저 스치는 인연이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건 참으로 나다우니까.
맘스터치에 하루 매출이 얼마일까? 임대료는? 오피스 상권에서 이 메뉴는 얼마나 팔릴까? 효과좋은 마케팅 기획은 뭐야? 대형 프랜차이즈의 물량과 재고 관리는? 그런 대답은 책에 없다. 어쩌면 그런 정보는 영업비밀에 해당되어 내부자가 되어야 얻는다. 아니면 부동산 거래정보도 뒤지고 회계보고서를 열어 추정치를 찾고 사례분석을 조합해 봐야겠지.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면 보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만큼의 무리는 백만원 어치가 되고, 이 정도 팔면 몇 십만원이 남는지가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강남 번화가에 임대료가 얼마인지 듣고나니,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와야 손익분기점을 넘길지 자연스럽게 머리가 굴러갔다. 20대에 책만 본 것이 아쉽다. 현장에서 물류가 돌아가고 사람이 움직이는 흐름을 일찌감치 체감했더라면 '돈을 버는 일'이 저 먼 세계의 일처럼 낯 설지 않았을 거다.
어쩌다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늦은 사회공부를 이렇게라도 채웠으면 됐다.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