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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Sep 09. 2022

엘비스는 이 건물을 떠났다

영화 - 쁘띠아만다

< 쁘띠아만다, 벵상 라코스떼, 이조르 밀트리에 주연, 2019 프랑스, 상처와 치유의 영화 >


 프랑스 영화에 관한 두 가지 선입견이 있었다. 첫째는 난해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것, 또 하나는 에펠탑이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내게 파리는 에펠탑에서 블랑 1664를 마셔야 하는 곳이었고, 런던은 공원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미션을 가진 곳들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잠시 여행가로 둘러본 것과는 다른 파리와 런던이 나온다. 잔잔했고 먹먹했다. 그리고, 에펠탑이 나오지 않았다.


 어려서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매는 서로를 더 돈독히 챙기는 사이다.

 누나 상드린은 젊은 시절 사랑으로 인해, 헤어진 남자 친구는 존재조차 모르는 7살 된 딸을 홀로 키운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그녀는 딸과 엘비스 춤을 신나게 추고, 때론 sns로 접근하는 남자들을 믿는 어리숙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밝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남동생 다비드는 민박과 공원 관리 등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순수하고 착한 24살 청년이다.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파리의 테러 사건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혀졌다.

- 갑자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상드린

- 하루아침에 엄마를 다시는 못 보는 어린 아만다

- 누나를 잃은 슬픔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어린 조카를 돌보고 일상을 살아야 하는 다비드

- 다비드와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총기 난사로 인해 팔을 다치고 꿈, 사랑, 일상의 삶이 힘들어진 레나


 비극으로 죽은 자, 그 비극의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 가야 하는 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을 안은 채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남겨진 자...

 모두에게 잔인한 비극이다.


 어리지만 의연히 눈물을 참아내던 아만다는, 엄마와 런던으로 여행 가서 응원하기로 한 테니스 경기를 엄마 없이 삼촌과 관람한다.

 응원하는 팀이 지자 그제야 펑펑 운다. 그동안 애써 철든 척하다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펑펑 운다.

 삼촌이 민박 손님을 맞으러 나가 일상을 덤덤히 살아내는 척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것처럼..


 엘비스는 이 건물을 떠났다.

 Elvis has left the building


 엄마에게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아만다는 삶을 통해 답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은 인생이어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담담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테니스 경기는 역전할 수 있고, 아만다도 눈물을 거두고 삼촌과 마주 보고 활짝 웃으며 기립박수를 칠 수 있기에…


  상실, 절망, 상처, 치유, 희망..

 엘비스가 건물을 떠났어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삼촌과 조카, 서로에게 멋진 파트너가 되어주고 있다.

 서로가 존재하고, 서로가 참아주고, 서로가 지켜줘서.. 참 다행이다.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감정을 담아냈다.

 다 보고 나니 어쩌면 에펠탑이 나왔다면, 이 영화에서는 사치스러운 장식품에 불과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니, 그 존재조차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잃은 채 지나쳐 보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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