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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Oct 17. 2022

뜨겁게 뜨겁게 널 보낸다. 안녕..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 인생은 아름다워, 염정아 류승룡 주연, 2022년 대한민국, 뮤지컬 영화 >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영화 예매에서 1위를 하길래 요즘 잘 만들어진 영화가 별로 없는 시기인가 싶었다. 이 영화에 관한 내 생각은 “신파극”, “뮤지컬 영화”, “복고풍 영화”였다. 이 각각의 장르도 썩 내키지 않았는데, 이들의 조합은 정말 최악 일지 모른다고 또 함부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이번 주말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싶었다. 생각난 몇 가지가 있었다. 오전 일찍 대청소를 마치기, 자전거 타기, 맛있는 브런치 먹기, 영화 보기, 운동하기 등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이 글을 쓰려했지만, 지금 신파 영화를 제대로 본 난 감정 과잉으로 인해 뭔가 날 차분히 가라앉혀야 할 것 같다.


신파...

 내가 생각하는 뜻이 맞는지를 귀가하자마자 어학사전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신파 영화의 뜻은

 “통속성과 대중성을 바탕으로 슬픔과 같은 감정의 과잉과 권선징악적 결말 따위를 특징으로 하는 영화”

 이 영화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신파 영화였다. 그리고, 제대로 날 저격해서 귀가하여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채우는데도 눈물이 남아있어 당혹스러웠다. 혹시나 이럴까 봐, 이럴 내가 싫어서 이런 장르의 영화를 피했나 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생에서 이런 장르의 영화의 필요성을 오늘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영화의 시작 부분이 뮤지컬 같은 형태로 시작하길래, 내 몸이 오그라들 것을 대비했다. 어설프게 라라랜드를 흉내 낸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사실, 난 라라랜드도 잠시 머물렀던 LA 배경이어서 본 것이지, 뮤지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는 노래로 충실히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라라랜드의 유치한 한국 버전일 것이라는 나의 건방진 생각은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영화를 보고 나서 반성하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미 어느 정도 예고로 스포 된 것 그대로이다.

평범하게 가족을 위해 살아온 중년의 여성이 갑자기 폐암을 선고받는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그리고, 그녀가 살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남편과 함께 하나하나 해나가는 내용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첫사랑 찾기였다.

그야말로 뻔한 내용인데도 슬프게, 유쾌하게, 현실적으로, 때론 어이없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래가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이문세, 이적의 노래를 평소 좋아하고, 가요의 가사를 중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 가사 하나하나를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왜 어떤 슬픔에, 사건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걸까.. 왜 소중한 것을 잃어야 비로소 아는 걸까...

 평범한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하루하루 살아가며 가슴으로 깨우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영화에서 정말 딱 현재 시점의 장면만 보면 더는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남편이 등장한다. 직장이든 가정에서든 자기 멋대로이고, 함부로 언행을 일삼고, 그야말로 루저 그 자체인 인간이 아내를 종 부리듯 부리고 함부로 대하는 장면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정말 저 여자가 사는 모습이 안쓰럽다 싶었다. 살뜰히 키운 남매도 다를 바 없다. 불량 청소년 같은 딸과 무뚝뚝하고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아들...

 

 그녀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과 함께 지나온 인생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리 영화같이 만나고, 뜨겁게 사랑하고, 죽어도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 결혼하고, 자식들을 낳고, 알콩달콩 잘 살아나가다가...................

어느새 익숙해지고, 삶은 늘 그날이 그날 같고, 힘들어지고, 나이 들어가고, 지치고, 즐거운 날보다는 무거운 현실로 우울해지면서 서로를 쉽게, 습관적으로 할퀴어 나간다. 삶의 무기력함은 서로를 탓할 때만 집요하고 비열할 만큼 적극적으로 변한다.

 보통 죽음을 선고받으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 뒤바뀌는 신파가 너무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이라 여겼던 나를 위해서인지, 이 영화는 한 템포 그 변화의 순간을 늦춰준다. 역시나 이 형편없는 남편은 아내의 죽음을 알고서도 여전히 나쁜 놈이었다.

 

 그리고, 그 후의 펼쳐지는 뻔한 얘기는 익숙한 멜로디 가사가 특별해지듯, 뻔한 내용을 특별하게 영화의 후반까지 끌고 가는 묘한 힘을 지녔다.

 영화 속 서울 극장의 간판에 걸리는 영화 포스터에 관해 영화 엔딩크레딧을 통해 알려주는 감독의 세심한 배려로 인해 이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OTT 스트리밍으로 보거나 아예 안 보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영화를 계기로 어떤 영화에 관해 내 취향이나 편견으로 예단하지 말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만들고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하고 싶다고, 집에서 쉽게 영화의 흐름을 멈추며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한번 상영이 시작되면 함께 보는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영화 한 편에 오롯이 몰입하길 바란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거장의 인터뷰 내용을 오늘 상영관에서 경험했다.

 오늘 브런치를 먹으며 좌석 선택을 할 때, 나는 날 잘 알기에 영화를 보는 도중 혹시나 울 수도 있어서 예매 좌석들 가운데 가장 앞자리로 선택했고, 식사를 마치고 냅킨 몇 장을 주머니에 챙겼다.

둘 다 오늘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내가 신이라면 젊음을 노년 다음의 순서에 배치하고 싶다는 말이 생각난다.

 일상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진정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인생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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