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푸른호수
<푸른호수, 저스틴 전 감독, 알리시아 비칸데르 주연, 2021년 미국>
미국에 입양되어 30여 년을 살아온 한국 남자가 불법 체류자가 된 이야기다. 안토니오는 겉모습만 다른 완벽한 미국인이었다.
몸에 새겨진 타투와 문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며 받는 차별적 질문, 그의 전과 기록, 아내가 싫어하는 친구들, 양부모와의 관계, 친어머니가 자신을 호수에 버리던 기억 등은 그가 살아온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엿보게 해 주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내 캐시와 그녀의 딸 제시, 곧 태어날 아기는 그를 빛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살면서 마주치는 누군가의 인생을 모르면서 함부로 편견을 갖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토니오는 억울한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중 그가 시민권자가 아님을 알았다. 추방을 당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울어버렸다. 뻔한 듯 함에도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내겐 반전에 반전으로 느껴졌다.
가족들과 헤어지는 공항의 터미널은 이방인인 그의 처지를 나타내 주는 공간적 연출 같았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터미널이란 중간적 공간은 인생의 터널을 헤치며 살아온 그에게 또 다른 터널로의 진입처럼 두려운 지점이다.
너무너무 사랑해…
부부가 나누는 이 말이 너무나 진심임이 느껴졌다. 추방당하는 남편을 뒤쫓아 아이들을 데리고 달려온 그의 아내의 모습을 보며, 오래간만에 사랑의 판타지에 대해 상기했다.
모든 게 갖춰지고 평온할 때는, 어쩌면 큰 결격이 없는 한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을 확률이 크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함께 하고 싶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 사랑은 누군가를 단순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이어야 한다. 대체 불가한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판타지다.
함께 노력하고 견디고 상처와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장해서, 언젠가는 평온함에 이르는 그 과정의 시간과 추억, 사랑, 고생과 갈등, 인생의 대소사 및 때론 권태의 극복마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어쩌면 현실은 좋은 타이밍에 나타난 적당한 조건의 사람과 결혼을 성사하기 위해서, 사랑의 형식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부정적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더 현실은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는지마저 잊어버리고 그저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 저스틴 전이 요즘 화제작 파친코의 감독이란 것을 알았다. 파친코도 보고 싶어 진다.
죽어도 가족과 함께 하고자 했다면, 한국에서 살아갈 방안에 대해 알아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연출과 시나리오의 영화적 과장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안토니오가 타투샵을 차리고, 아내는 영어 강사를 하며 애들 잘 키우며 사는 시나리오보다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이민법의 잔인한 허점과 실태를 고발하기에 영화적 시나리오로서는 나았을 것이다.
때론 잘 만들어진 영화가 뉴스로 접하는 기사보다 더 많은 실태를 알려주고 관심을 일으킨다. 이 영화와 같은 현실 속 주인공들의 통계적 수치에 놀랐다.
계층과 인종의 태생적 한계, 소수에 대한 사회의 습관적 편견과 차별, 어떤 이슈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참여의 이유, 그 중요성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살아가는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겐 ‘이게 바로 영화다.’라고 느껴지는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