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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Nov 18. 2022

K 장남의 미국 버전

영화 - 길버트 그레이프

< 길버트 그레이프, 조니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1994년 미국 가족영화 >

 

 내가 생각했던 조니뎁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였나 보다. 처음엔 길버트 그레이프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일 인물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난 외모 지상주의자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조니뎁의 훈훈한 청년 시절의 외모를 보고 감탄했다.

 이 영화를 보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에게 처음으로 큰 매력을 느꼈다. 레오나르도의 어린 시절 연기를 보고, 어떤 분야에서 천재가 분명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연기 천재를 평가할 정도의 일가견을 갖고 있지 않지만, 정말 어니의 역에 레오나르도를 대체할 인물이 없을 정도로 그는 딱 어니였다.

 

 미국의 작은 마을 엔도라는 어떤 변화도 없이 잔잔한 시골 마을이다. 여기에 길버트 그레이프 가족이 살고 있다.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충격을 받아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엄마는 초고도 비만의 상태로 살아간다. 누나와 한참 사춘기인 여동생, 평생을 어린아이처럼 돌봐줘야 하는 지적장애인 어니가 살고 있다. 길버트는 이 집의 장남이자 가장이다.

 

 식료품 가게에서 일을 하는 길버트는 캠핑카 고장으로 엔도라에 잠시 머무르는 자유롭고 따뜻한 영혼을 소유한 베키에게 마음을 주고 위안을 얻는다.

 

 베키가 말한다.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가족의 굴레로 인해 엔도라를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길버트가 말한다.

 "사실 갈 데가 없어..."

 

베키가 묻는다.

"뭐하고 싶은지, 원하는 걸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요. 바라는 게 뭐예요?"

길버트가 답한다.

"우리 가족이 살 좋은 집, 엄마가 에어로빅 강습을 받는 것, 아너가 아프지 않는 것.."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여 길버트는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조차 없다. 길버트는 바라는 게 많을 젊은 청년인데도 자신보다 가족만을 생각한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베키의 질문에, 길버트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미 좋은 사람인데 그는 이리 말한다. 한 때 길버트를 사랑했던 유부녀도 마을을 떠나면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한다. 우리 아이들도 너처럼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니를 놀리거나 누구도 손끝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한 형이었건만, 길버트는 어느 날, 말을 지독히도 안 듣는 어니를 때리고 만다.

 가족들에게 염증을 느끼던 가운데 어니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길버트는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나, 사실 갈 곳이 없다. 그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안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온 길버트에게 엄마는 "넌 나의 갑옷 입은 기사님이야"라는 말을 한다. 난 이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아들에게 지우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날 밤 눈을 감고 말았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남매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다. 어머니를 2층에서 옮길 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한다.

 그들은 어머니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 집을 불태운다. 가족의 비극과 애환이 담긴 그 집을 훨훨 태워버린다.

 

 10살까지 살면 기적이라던 19살 어니를 데리고 길버트는 베키의 캠핑카에 올라타고, 비로소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니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엔도라를 벗어나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이에게는 단란한 안식처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스러운 굴레이다.

 영화를 보며 놀란 것은 한국식 장남 컴플렉스와 의무감을 가진 청년이 미국에도 있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운명처럼 그 의무를 다하려고 애쓰는 길버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살한 아버지, 초고도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 지적 장애인 남동생만 놓고 본다면 불행의 집결체 같은 가정인데도, 자식들은 엄마를 위해 음식을 차린 식탁을 매번 엄마 앞으로 옮기고, 엄마 곁으로 모여 이야기하고, 엄마를 보살피고, 엄마를 안아주며 항상 엄마를 배려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비록 남들에겐 최악의 가족처럼 느껴지더라도, 이들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온을 찾으려 한다.

 

 정해진 운명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바꿀 수 있는 일들을 바꿔나가며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따뜻한 가족 영화였다.


" Good bye 는 떠나가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야.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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