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돈 많은 친구들
< 돈많은 친구들,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니콜 홀로프세너 감독, 2006년 미국 >
다소 원색적인 제목에 전혀 치장이 없길래,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40대인 4명의 여자들의 우정을 다루었다고 했다. 우정과 사랑 등의 숭고한 주제와 돈을 연관 짓는 것이 불편할 수 있기에, 영화가 이 함수 관계를 어찌 풀어나갈지도 궁금했다.
여자 1 : 올리비아
4명 중 유일한 미혼이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이다. 과거 선생님이었으나 부유층 아이들의 모욕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학교를 떠난 인물이다. 현재는 가정부를 하고 화장품 샘플을 받아가며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부자이고 가정을 가졌다.
과거의 남자 친구를 잊지 못하고 유부남인 그에게 전화를 걸고 끊는 일상을 반복한다. 소개팅에 나온 어이없다 못해 형편없는 최악의 남자와도 데이트를 하며, 그의 황당하고 무리한 요구마저 거절을 못하는 자존감이 낮은 여자이다.
어느 날, 가정부 일을 하는 집주인의 데이트 신청을 덥석 받는다. 이 남자는 몹시 지저분한 집을 정리해달라면서도 올리비아에게 돈을 깎아달라고 졸랐다. 게다가 자기 관리마저 전혀 안 하는 백수이다. 그런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은 첫날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자 친구들의 기부 파티에 동행하게 된다.
여자 2 : 제인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이지만 매사 신경질적이고 불만이 많다. 머리를 잘 감지 않는데 삶에 기대가 없어서란다. 자상한 남편의 고마움도 모르며, 늘 불만을 갖고 사는 그녀의 모습은 엉뚱한 오해를 낳게 된다. 조근조근 대화를 즐기는 남편을 지인들로부터 게이라는 오해를 사게 한다.
여자 3: 크리스틴
남편과 함께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쓰며 살아간다. 매 시간 붙어있으며 갈등이 커져간다. 이들은 서로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여자 4: 프레니
가장 이상적으로 살아가며 가장 돈이 많은 친구이다. 천문학적 기부를 하면서도 친구 올리비아의 도움 요청은 거절한다. 이성적인 판단력과 냉철한 거절이 그녀를 부자로 만들었나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는 친구 사이인 네 여자들의 일상과 사랑, 결혼 생활 등의 민낯을 보여준다. 솔직히 영화를 다 보고 허무함을 느꼈는데도 이리 적고 있다. 이들의 일상과 우정은 위태로워 보였다.
영화를 본 다른 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평점을 검색해보니 예상대로 높지 않았다. 씁쓸하고 현실적인 일상을 다룬 영화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내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 올리비아의 백수 고객이, 사실은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인물이라는 반전 결말을 접하며, 동화 ‘개구리 왕자'가 생각났다.
아니! 왜? 그런 돈 많은 왕자가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부의 임금을 깎았는지도 황당하다. 자신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여 돈 많은 티를 안 냈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개구리 왕자 결말은 비현실적이고 영화를 본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해서, 뉴욕대 영화과 출신인 감독의 필모그래피까지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 내가 올리비아를 지금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어릴 적 친구가 아니었다면, 조건에 의해 필터링되는 인간관계라는 이 대사가 가슴이 아프고 씁쓸했다.
나 역시 어떤 친구에겐 돈이 많은 친구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돈이 적은 친구이기도 하다. 상대적인 것이다.
결단코 나의 베프들을 이런 잣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존재가 몹시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친구들에게 "돈 많은 친구"이고 싶었던 간절한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맥주를 마셨는데, 오픈 기념행사를 하는 천 원짜리 한치 구이 한 접시를 달랑시키고는 꽤나 여러 명이 먹었다.
이 날 난 취기로 인해,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을 발휘했다. 이 한치 한 마리를 극세사에 가깝게 난도질을 했다. 과장된 기억으로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같았다. 한 접시가 풍성해졌고, 우린 아끼면서 나눠 먹었고, 지금까지 최고의 안주로 기억된다.
훗 날 취업을 하고 돈을 벌었을 때, 안주 가격을 보지 않고 친구들에게 술을 사주었다. 이때 스스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혼자서 뿌듯했다.
이제는 친구들과 수제 맥주와 고급 안주로 그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 나누며, 우정을 소중히 지켜나가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외국이나 한국이나, 돈이 많거나 적거나...
어쩌면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