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어디갔어 버나뎃
< 어디갔어 버나뎃, 케이트 블란쳇 주연, 미국, 2019년작 >
영화를 보고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감상 후 느낌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훗날 다시 그 느낌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어려서 읽은 책은 읽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나고 잊혀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망각을 좀 더디게 하고 싶어졌다.
이 영화에서 뇌는 <디스카운팅 메커니즘>을 따른다는 말이 나온다.
누가 마음에 쏙 드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준다면 정말 행복한데, 다음 날에는 행복하지만 전날만큼은 아니다는 것이다. 1년 뒤에는 목걸이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뇌가 생존을 위해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데 더 큰 에너지를 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불안으로 지금 눈앞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영화의 젊은 시절 이 부부의 사진은 반짝였다. 그 누구보다 이상적인 반려자라 여긴 이 부부 역시 서로에게 보석 같은 매력을 찾아냈던 그 시절을 잊고 서로의 단점을 날카롭게 찾아내고 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엄격한 잣대로 결론지어, 남보다 못할 정도로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안타깝다.
영화 초반의 버나뎃은 사회 부적응자 같았다. 그런 그녀의 반전에 놀랐다. 알고 보니, 과거에 그녀는 건축계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를 지지해주고 누구보다 잘 알아주던 영혼의 동반자와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빛을 잃어갔다.
그렇지만, 이런 그녀가 자신을 잃어가는 동안 얻은 또 하나의 자아이자 친구인 딸 비는 버나뎃의 희생으로 빚어낸 보석 같은 인물이다.
남편 탓을 하자는 것도, 엄마의 희생을 부각하자는 것도, 결혼생활의 불합리를 꼬집자는 것도 아닌 기획의도는 잘 읽혔다.
지금의 버나뎃은 사회 부적응자인 데다가 가상의 인물인 만줄라에게 사기당해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보낸 그야말로 민폐녀이자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워크홀릭 남편은 냉정한 조치를 취한다. 그가 파악한 그녀가 저지른 결론적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안되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현실 부부는 여기서 이야기가 멈춰질 수 있다. 포기하고 살거나, 갈라서거나...
그런데, 버나뎃이 사라지면서 이 영화는 또 다른 답안지를 제시해주는 것 같다. 멋진 혜안이 되어 준 것 같다. 엘진(남편)이 청혼할 때의 18가지 계시의 의미를 되새기며..
영화 후반에 사라진 버나뎃은 남극에서 자아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사라진 엄마를 찾는 딸 비가 아빠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버나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비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의 말 중에 그녀에게 남은 말
“ 인생은 지루한 거야. 갈수록 더 지루해져. 그런데. 그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어 “
인생을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버나뎃은 하마터면 정신병원에 갇힐 뻔했다.
남극 기지를 재건축하려는 의지에 불타서 잔망스러운 춤을 추는 버나뎃, 아니 케이트 블란쳇!! 너무 멋지다.
<블루 자스민>의 여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캐릭터를 보여줬다. 블루자스민에서 명품으로 치장했던 그녀보다 항공 점프슈트를 입은 버나뎃 그녀는 훨씬 멋져 보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내 어머니가 생각났다.
난 이제서라도 날 잃지 않으려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한 내 어머니에겐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왔다.
어린 날 나의 뇌리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친구네 놀러 갔는데 마침 친구는 엄마와 밥을 먹고 있었다. 고봉만 한 밥과 총각김치만이 밥상에 올려져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본 친구의 엄마가 손으로 총각김치를 먹여주는 장면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어린 난 언제부터인가 그 모습이 엄마로서의 정석이라 여겼나 보다. 마침 그때 내 어머니는 당시에 흔치 않은 기회로 외국에 공부를 하러 가셨다. 누구보다 노력하는 어머니를 이해하기에 난 어렸다. 마치 버려졌다는 피해 의식을 가진 것처럼 그날 총각김치를 먹여주는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처럼 뇌에 찍어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내게 총각김치는 소울푸드가 되었다.
한참을 엄마에게 어리석게 굴었고, 그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어머니에게 희생의 덕목을 강요하고 싶었던 그 못됨조차 엄마 탓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버나뎃의 딸 비처럼 성숙한 청소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고친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날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미숙한 자아가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며 <툴리>가 생각났다. 이건 툴리와 또 다른 차원의 엄마 응원기 같다.
영화의 스토리겠지만, 남극 기지의 멋진 설계도를 자세히 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남극에 여행가보고 싶어졌다.
영화 말미에 나온다. 펭귄 부부가 평생 함께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중 20%는 그렇지 않다고…
80%는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 어떤 선택! 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