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밤에 우리 영혼은
< 밤에 우리 영혼은,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2017년, 미국 >
켄트 하루프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책을 구입해서 읽고 싶어졌다.
젊은 날 멋진 배우였던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노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이다. 그리고, 아직은 막연히 상상해보는 노년의 삶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노년의 삶에서 두려울 수 있는 독거노인에 관한 문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제목의 “at night”은 황혼기의 의미이기도 한가보다.
한 동네에서 오래 홀로 산 남녀가 주인공이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루이스에게 어느 날 밤, 그야말로 느닷없이 이웃의 여자가 찾아온다. 다짜고짜 찾아온 그녀의 황당한 제안은 밤을 함께 보내자는 것이다.
그저 침대를 공유하고 뒤척이는 밤을 함께 보내자는 제안이다. 아무리 일상이 무료한 독거노인 루이스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엔 무리인 제안이다. 카페에 모여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일삼는 동년배 할아버지들과의 모임을 뒤로한 채, 루이스는 에디 무어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첫날, 양치를 정성스럽게 하고, 셔츠를 차려 입고,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를 공유하고 밤을 보낸다.
둘째 날, 이들은 또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 침대에서 잠 못 들던 밤 시간을 공유한다. 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자, 아무리 미국이지만 동네에 소문이 돌고 수군대기 시작한다.
이때 에디 무어는 오히려 루이스보다 과감하다. 뒷문이 아닌 앞문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언젠가는 보란 듯이 화려한 옷을 입고 시내에도 함께 나가 팔짱을 낀다. 그녀는 평생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왔다면서 이젠 그러기 싫다고 루이스에게 말했다.
밤이 아닌 낮을, 일상을 점차 함께 해나가기 시작한다.
에디에게 루이스가 묻는다. 왜 날 택했냐고..
에디가 답한다. 아무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고…
좋은 사람이란 느낌은 어찌 받았을까 한참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의 이런 평화로운 관계에 위기가 찾아온다. 에디의 손자를 맡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손자를 함께 돌보며 이들의 관계는 오히려 돈독해진다.
과거의 큰 실수와 상처, 가족의 아픔과 비밀, 노년의 힘듦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고, 이들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손자의 상처를 돌보며 각자 젊은 날 자식들에게 준 상처를 되돌아보고 마주하게 된다.
위기의 가정 속에서 불안한 어린 손자, 다리를 다친 반려견, 젊은 날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큰 상처를 가지고 외롭게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낸 두 노인... 이들 모두는 서로에게 스며들며 상처를 치유한다.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마음을 다하며 뜻밖의 생활이 펼쳐진 이들에게 이별이 찾아온다. 노인이 되면 외롭지만 오롯이 평온한 삶일 줄 알았던 철없는 내게, 보란 듯 예상치 못한 고된 노후의 삶을 보여준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가요?"라고 젊은 날 큰 상처로 남은 말을 하며 루이스는 또다시 혼자 남겨진다. 영화의 첫 장면보다 더 외롭게 느껴져서 마음이 안 좋았다. 이전의 외로움보다 더 쓸쓸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노인들의 지혜, 젊은 날의 꿈을 상기시키는 화구, 아이폰..으로 조금은 날 안심시키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익숙한 아이폰의 벨소리가 반가웠다.
한 편의 영화를 어느 시기에 보느냐에 따라 그 관점은 정말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화자가 누구냐, 누구의 시선에 따른 해석인지는 엄청난 간극이 생길 수 있다.
- 젊은 날의 루이스와 에디
- 젊은 날의 에디와 그의 아들
- 젊은 날의 루이스와 딸, 그리고 그의 아내
- 노년의 루이스와 에디
- 노년의 자식들
- 동네의 루머 생산자들, 응원자들
…….
나도 이들 중 어느 누군가의 역할을 했을 것이고, 어느 시기를 살고, 그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실수도, 욕망도, 후회도, 갈등도,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이별도, 성공도, 안정도, 상처도, 진실도, 포기도, 미움도, 용서도, 두려움도, 희망도, 기대도...
나의 관점들은 변해가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완성되지 않은 채 멈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남들이 만든 답안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택한 답을 정답으로 선택하게끔 유도하는 세상이다. 평가가 아닌 삶에서는 매력적인 오답뿐 아니라,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방법에 관해서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한 번뿐인 인생은 남에게 평가받기 위한 삶이 아니다. 훗 날 스스로 매긴 채점표를 받아보고, 내가 평가하고 후회하고 만족하고 책임지는 것일지도…..
영화를 보고 나서 두 주인공의 리즈 시절을 찾아봤다. 부모님의 흑백사진을 보는 듯 기분이 묘했다.
누구에게나 젊음이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노년으로 향하고 있다.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