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애프터 웨딩 인 뉴욕
< After the Wedding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줄리안 무어, 미셀 윌리엄스, 빌리 크루덥 주연, 2019 미국 >
넷플릭스 첫 화면에 뉴욕과 인도가 배경인 영화가 뜨길래 선택했다. 뉴욕, 웨딩이란 단어가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다.
뉴욕에 대해 막연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 <러브 어페어>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찾아갈 정도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이다.
이 영화를 선택한 또 하나는 주연 배우들 소개였다.
조금은 우울하게 봤던 <우리도 사랑일까>와 <블루 발렌타인>에 나온 매력적인 배우 미셀 윌리엄스, 그리고 얼마 전 봤던 <어디갔어 버나뎃>의 멋진 남편 역이었던 빌리 크루덥이 나오길래 봤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이자벨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후원자의 요청으로 뉴욕으로 가게 된다.
또 다른 여주인공인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행복한 가정까지 가진 테레사의 등장 씬에 눈이 갔다. SUV를 다소 거칠게 몰고, 달리는 차에서 신나는 음악을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낯설지 않아서였을지도..
테레사의 멋진 등장과 그 캐릭터에 대한 나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예민하고 예상과 다른 행보에 실망스러워졌다. 후원하는 협상의 태도, 부하직원을 대하는 태도, 사랑하는 남편에게 갑작스럽게 감정적으로 대하고 모질게 쏟아붓는 말, 온 힘을 다해 성장시킨 기업의 매각 등등의 모습은 점점 의문이 생겼다.
이 모든 의문은 그녀의 딸 그레이스의 결혼 이후 실마리가 풀린다.
테레사는 죽음을 앞두고 남편의 오래전 연인이자, 그레이스의 생모를 뉴욕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거액의 후원을 빌미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영화의 중간중간 감동적인 면도 있고, 테레사의 희생과 사랑도 알 수 있고, 눈물을 흘린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영민한 사업가였던 테레사가 결국 돈으로 자신의 죽음 이후 가족들의 삶을 설계하고자 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억지로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이는 것은 아무리 테레사가 20여 년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자 사업가였고, 죽음을 앞두었다고 해도 미화되긴 어려웠다.
그레이스를 사랑으로 20년 보살폈으니까, 이자벨 당신도 나의 죽음 후에 8살 된 쌍둥이 아들들을 맡아달라는 억지에 가깝다. 거액의 후원을 하겠으니 이자벨은 인도가 아닌 뉴욕에서 지내야 한다라는 잔인하고도 일방적인 협상은 죽음으로도, 영화의 시나리오도 이해가 안 되는 횡포이자 폭력이었다.
영화에 묘사되지 않은 세월 동안 훌륭했을 여주인공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속상해지는 대목이다.
남편에게 쏟아내는 잔인한 말 "미혼부 스토리가 지긋지긋하다. 따지고 보면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키웠다."
이자벨에게 "당신은 그저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다. 선한 일을 한다고 자신의 아이를 버린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가장 약점을 잘 아는 사람이 팩트로 공격하는 것이기에 잔인하게 느껴졌나 보다.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간섭하고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여 년 전의 인연들이 억지로 다시 엮이는 것도, 이자벨이 거액의 후원과 자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이자벨마저 보육원의 애제자 제이에게 뉴욕에 가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것도 불편함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나 보다.
영화 속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내가 세상을 스쳐가는 걸까
세상이 나를 스쳐가는 걸까…….
인생에서 사랑, 결혼, 이별, 가족, 죽음 등에 관한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영화를 본 날, 안타깝게도 이어령 전 장관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정치인이기보다 학자였던 분의 죽음을 앞둔 인터뷰 내용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을 정독해서 읽었을 정도로 내겐 진정한 어른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이어령 장관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의 한 구절이 영화와 맞물려 떠오른다. 책과 방송으로 만난 분들이지만 장녀 이민아 목사와 이어령 교수가 편안함에 이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