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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Nov 13. 2021

가을

자연, 바람, 햇살이 만든 작품

가을이 되고 코스모스를 보면 떠올리게 되는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이던 시절 운동회장에서 백군 옷에 머리띠를 두르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지폐 한 장을 손에 꼭 쥐고 동네 어르신 양 옆으로 언니와 나란히 서서 찍힌 사진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어릴 때는 몸이 꽤나 둔해서 달리기에는 참 재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감투를 쓰고 있던  아빠가 주변 사람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반 바퀴나 뒤지기 일쑤였다고 하니 말이다.

위의 사진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준비되었을 상품 중 어느 것 하나 내 차지가 되지 못하고 이어달리기에서 넘어지기까지 한 내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자 평소 우리 집 형제들을 예뻐하시던 동네 친척분이 그런 나를 달래느라 용돈을 주셨고 울음기가 채 가시지 못한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 어르신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나는 이 만큼 훌쩍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그때 그 시절 만국기가 휘날리고 넓게만 보이던 학교 운동장과 하얗게 선이 그어진 트랙들 사이로 이를 악물고 뛰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나는 참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늘 더 빨랐고 아빠를 닮아 그렇다며 엄마는 자꾸 놀리곤 했다.


가을대운동회를 위해 두세 달 전부터 부채춤이며 꼭두각시 같은 율동을 준비하게 되는데 잘한다 칭찬 듣는 그 분야에 더 집중할 것이지 욕심 많은 아이였던 나는 재능 없는 운동까지도 다 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준비가 시작되는 그 시기부터 이번에는 꼭 많은 경기 중 하나라도 잘하리라 다짐을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이던가. 진작부터 나를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면 편했으련만 참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졌다가 내심 상처를 받고는 했다. 운동을 못하는 것이 큰 죄도 아닌데 나는 왜 못하나, 왜 아빠를 닮아 이러나 원망도 했던 어린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푸른데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학교 뒷산이 알록달록 물들어 갈 무렵 운동회 날이 되면 평소와 다르게 학교 운동장에 먹을 것들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했고 학교 담벼락 둘레로 늘어선 소나무들 사이사이로 돗자리를 깔고 자리 잡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선보이는 자리라 긴장이 되면서도 그 축제 같은 분위기에 참 설레기도 했다.     

친한 친구와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지면 그렇게 서운하다가도 같은 팀끼리 응원도구를 만드느라 며칠을 정성을 쏟고 응원구호나 응원가 등의 비밀이 새 나갈 새라 친구에게도 입을 꼭 다물었다. 꼭 나가야 하는 두세 경기를 제외하고 내가 선수로 선발되는 경우는 드물어서 응원석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우리 팀 이겨라 목청껏 응원하고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없이 자리를 지켰다.

길게만 느껴지던 교장선생님 축하인사가 끝나고 준비했던 율동들을 선보이고 갖가지 체육행사가 연이어 이어진 후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줄다리기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동원되어 마치 마을 대항인 듯 되어 버리곤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구 엉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범벅이 되고 나면 피날레인 박 터트리기를 하게 되는데 집에서 미리 콩이며 팥 등을 넣어 만든 작은 주머니를 준비했다가 긴 작대기 끝에 매달린 박을 향해 열심히 던지는 것이다. 한참 동안의 노력 끝에 박이 터지면 오색종이들이 휘날리며 온 운동장을 멋지게 수놓았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주섬주섬 어른들이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할 때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여전히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거운 한바탕 축제이지만 오늘 생긴 사건사고들은 두고두고 어른들과 아이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었다.


소박하지만 순수했고 참 아름다웠던 시절. 쾌청한 가을 하늘과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예쁘게 날아다니던 잠자리가 함께 떠올려지는 그런 날.


산책 삼아 자주 나가는 길가로 잘 정돈된 코스모스를 만나게 되면 그 시절 집에서 학교 가는 길가로 죽 늘어서 있었던 코스모스 때문인지 학생 수가 너무 줄어 지금은 폐교가 됐지만 아담했던 학교 곳곳의 모습과 그 안에 녹아있는 나의 어린 시절들이 떠올려진다.


코로나로 추억을 쌓아 올릴 많은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사진마다 죄 마스크 일색인 이 서글픈 현실과 내 기억 속 찬란한 모습들이 대비되면서 더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우리 아이들.

그럼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자연과 바람, 햇살이 만들어내는 작품과도 같은 날들.

벌써 싸늘한 바람과 성급한 첫눈이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게 만들지만 이마저 온전히 즐기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무시래기밥     

[재료 및 분량]

- 쌀 1C, 삶은 무시래기 100g, 마른 표고버섯 2개, 들기름 1T, 집간장 1t, 물 1½C

- 양념장 : 풋고추 1개, 홍고추 1개, 집간장 2T, 매실액 1T, 통깨 1T, 참기름 1T, 물 약간


[만드는 법]

1. 쌀은 깨끗하게 씻어 1시간 정도 불린다.

2. 마른 표고버섯은 미지근한 물에 담가 불린다.

3. 삶은 무시래기와 표고버섯을 잘게 썰어 들기름과 집간장을 넣고 함께 버무린다.

4. 냄비에 쌀과 밥물을 부은 다음 무시래기와 표고버섯을 얹어 센 불에서 끓인다.

5. 끓으면 약한 불로 줄이고 10분 정도 더 끓인 다음 뜸을 들이고 양념장과 곁들여낸다.     

Tip : 무시래기는 푹 삶은 뒤 그대로 뚜껑을 덮어 식혀서 찬물에 헹궈 쓰면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난다.



두부찌개     

[재료 및 분량]

- 두부 1모, 청양고추 1개, 홍고추 1개, 팽이버섯 50g, 들기름 1T, 집간장 1T, 고춧가루 2T, 다진 생강 1t,

  소금 약간, 채소물 3C


[만드는 법]

1. 두부는 적당한 크기로 썬다.

2. 청양고추와 홍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팽이버섯은 먹기 좋은 크기로 뜯는다.

3. 달군 뚝배기에 들기름을 두르고 집간장과 고춧가루를 볶는다.

4. 고추기름이 생겨나면 채소물을 붓고 끓이다 두부를 넣어 간이 배도록 끓인다.

5. 다진 생강과 팽이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Tip : 두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면 간수가 빠지고 잡냄새도 사라진다.



고춧잎무말랭이무침     

[재료 및 분량]

- 무말랭이 120g, 말린 고춧잎 20g, 고추장 1T, 매실액 1T, 집간장, 1T, 조청 1T, 고춧가루 1t, 통깨 1t


[만드는 법]

1. 무말랭이와 고춧잎은 잘 씻은 뒤 물에 불린다.

2. 불린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꾹 짜서 물기를 뺀다.

3.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주물러 색과 맛이 배도록 한다.

4. 고춧잎과 매실액, 집간장, 조청을 넣고 다시 한번 버무린 다음 통깨를 뿌린다.     

Tip : 무말랭이를 지나치게 불리면 오독오독한 맛이 사라지므로 적당히 불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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