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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19. 2021

미안합니다.

도처에 사과할 일 투성이네

한참을 미혼으로 있었던 나이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생활환경이 많이 달라져버려서 자주 못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초반에야 신혼 얘기, 남편 얘기며 시댁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나의 직장생활이나 솔로 생활을 얘기하면서 어느 정도 유지가 되지만 아이가 생기고 육아로 정신없어진 친구의 상황을 미혼인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이니 오해도 생기고 서운한 점들이 쌓이면서 사회생활을 핑계로, 육아를 이유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막상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주변 친구들은 이미 아이들이 한참 커버린 후라서 교육문제로 더 바쁘기도 하고 육아의 고충을 이해는 하겠지만 상황을 받아들여주길 바라기엔 염치없고 미안해 여전히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간접 경험이나 예상만으로 잘 안다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살면서 참 많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해가며 지레짐작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거나 억측을 해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위주로 생각하고 내 감정만 앞세웠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참으로 오만했구나.

살아오면서 내게 주어진 일들 중 육아가 가장 힘들다는 고백을 아이가 태어나고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하게 될 거면서 그렇게나 나는 잘난 체를 하고 살았구나.


미안하다 친구들아.

너희들이 그렇게나 중요하고 힘든 살림과 육아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어. 너희들의 어려움과 힘듦이 보이지 않았고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이 늦은 사과를 그들이 받아주길…



아이들은 성향과 기질이 제각기 다르고 한번 육아를 해봤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이를 키울 때는 또 새로운 점도 많다.

우리 아들은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인데 첫째인지라 엄마가 스스로 전전긍긍한 면은 있었어도 놀라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반면에 둘째인 딸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고 호기심이 많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사건사고가 자주 생긴다.

아이와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육아도우미 친정 엄마는 딸의 모습이 “딱 너다” 하신다. 나 또한 인정하는 바, 아이로 인해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거나 화가 나거나 내가 저랬겠구나 싶은 순간에 내 입에서는 “엄마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매일 매끼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고 아이들 일정에 맞춰 하루에도 몇 번 집을 들락거리고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을 반복하는 순간순간 몇 번이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엄마 미안해.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내 어린 시절의 엄마에게 늘 투정 부리고 짜증을 내고 너무 힘들게 했어. 머리가 조금 커서는 그 자리에 있는 엄마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약간은 답답해한 것 같기도 해.


늙은 딸 힘들세라 육아와 살림 도우미를 자처하고 사는 곳까지 옮기신 우리 엄마.

내가 참 많이 미안했어~



나는 오늘도 살림과 육아를 통해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한 뼘쯤 커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하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시로 사과하고 미안해할 일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마음과 생각이 커져가고 있다는 만족감에 나이듦이 슬프지만은 않은 것 같다.

육아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성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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