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도무지 내 힘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을 때, 그래서 모든 것을 등지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와 현관문 신발장 앞에 쪼그려 앉아 나의 풀린 신발끈을 묶어주던 아버지를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은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시련이라는 안개가 삶에 드리우면 가장 먼저 잊히기 쉬운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시간을 내어 노력해서 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을 쉬는 것처럼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며 너무나 평범하기에, 뿔을 단 검은 악마처럼 이질적인 고통 앞에서 산들바람처럼 온화한 사랑은 한없이 무력해지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악몽이라도 작은 알람시계 소리에 쉽게 깨어지듯,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알게 된다. 악마에게 시달리던 내가 끝내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붙든 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의 실낱같은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붙잡아주고 있음을.
나의 존재 이유를 나에게서만 찾지 않기를. 창가의 선인장도, 작은 강아지도, 유쾌한 친구도, 식탁 위의 따뜻한 저녁 식사도 모두 당신의 존재 이유임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