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처럼 무르지만 탕후루처럼 단단한 우울증 환자의 우울 극복 레시피
우울은 수용성일까?
슬픔은 눈물로 새어 나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눈물은 슬픔의 상징이자 증명이라고 늘 여겨왔다. 그래서 언제나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왈칵 터지는 순간이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만 같아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눈물이 눈물을 부르는 슬픔의 악순환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던 어느 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미리 밝혀두자면, 전문가들은 이 이야기를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다만 나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고 싶었다.
'우울은 수용성이기 때문에 샤워를 하면 해소된다.'라는 말. 이 문장은 사실 오답에 가깝고, 물과 우울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한 전문의의 말이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눈물은 어쩌면 마음 곳곳에 번진 우울을 조금은 씻어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는 순간은 넘어진 것이 아니라 치료의 과정이며,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우울이 수용성이라는 믿음을 차라리 붙들고 싶다.
샤워를 하며 좋은 향기를 맡고 몸을 깨끗이 씻어내는 동안, 우울에 잠식돼 있던 내가 해방된 듯한 착각이 비록 찰나에 그친다 해도, 마음을 꽉 조이던 스트레스가 잠시 느슨해지는 것은 분명 실제이고, 그것만으로도 건강에는 좋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우는 것조차 힘이 들고, 샤워할 기력마저 사라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리 애써도 콱 막힌 샤워 호스처럼 감정은 흘러나오지 않고, 생각은 멍해지며 기억력마저 흐려진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자주 지나왔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강물이 결국 녹아 흐르듯, 세상의 모든 것은 그러하다는 사실이다.
'애쓰지 마세요. 시간도, 눈물도, 계절도, 고통도 이내 흘러갈 뿐입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가냘픈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쩌면 그것이 슬픔이 아니라 구원일지도 모릅니다.'
수용성인 우리의 우울은, 애쓰지 않아도 결국 저절로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