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나는 늘 상처투성이였다. 누군게에게 맞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마음엔 늘 멍이 들어있었고 나는 습관처럼 밤새 그 멍들을 꾹꾹 눌러대며 나를 더 아프게 하곤 했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하나 둘 가슴을 명중하여 멍들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내겐 구술총 같은 그 말들을 마치 비치볼처럼 서로 튕겨가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이 남들보다 여려 상처자국이 깊고 오래 많이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방비하게 상처받으며 나 자신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나는 언제나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흔히 우울증에 대해 나약하기 때문에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해다.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자서 오랜 시간 참고 견디며 싸워오다가 결국 무너져 내렸거나 강한 트라우마로 인해 발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달리 우울증에 취약한 기질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고전적 기질론에 따르면 기질은 크게 총 네 가지로 나뉜다. 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이 그것이다. 나는 그중 자기 성찰적이고 예민한 우울질을 타고 난 아이였다. 어릴 때는 그것을 저주로 여겼다. 나는 왜 남들보다 여릴까? 나는 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날까? 나는 왜 남들이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을 밤새 되새기게 될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 깨닫기로 모든 기질에는 장단점이 있다. 나의 여리고 예민한 기질은 내게 깊은 상처를 새김과 동시에 깊은 공감능력을 키워주었고 상처를 받고 회복하며 새살이 돋아 커다랗게 자란 마음으로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게 하였다.
가끔 이유 없이 때때로 우울감이 밀려온다는 사람들이 있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탓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당신이 가진 우울한 기질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똑같은 사계절을 살아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봄날의 바람에 실려온 꽃잎이 당신의 가슴에는 책갈피처럼 머무를 수도 있고 똑같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어도 남들에겐 파란색일 뿐인 작품이 당신에겐 무지갯빛으로 다가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달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기질의 모습이 커튼 새 비치는 아침햇살처럼 다가가 당신의 악몽을 깨워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