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탕후루 5개

순두부처럼 무르지만 탕후루처럼 단단한 우울증 환자의 우울 극복 레시피

by 김희주
정신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눈물만 꾹꾹 참아내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도중 온몸의 힘이 마치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모조리 빠져나갔다. 친구가 실신 직전의 나를 업고 보건실에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곳에 나를 데리러 온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겨우 붙잡고 있던 실낱같은 이성의 끈을 놓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꾸역꾸역 눌러 가둬놓았던 모든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폭발했다. 그때의 상황이나 감정이 모두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던 것은 기억한다.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여러 절차를 거쳐 나는 동의하에 보호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것이 첫 치료의 시작이었다.
예상대로 나는 강박증과 우울증 판정을 받았고 그곳 병동에서 우울증 뿐만이 아닌 다양한 병증의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선 내 또래의 친구도 있었다.
그녀는 자택에서 자신의 복부에 식칼을 찔러 넣었다가 병동에 강제 입원 되었다고 했다.
영화에서처럼 칼이 쑥 박히지 않아 여러 차례 찔러 넣는 시도를 해야 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도 나를 해하고 싶다는 충동을 여러 번 느꼈으나 실행하지 못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끝내 실행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행동을 과연 오롯이 자의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 여러 차례 자해를 반복했던 또 다른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한 혹은 타인의 눈에 보이도록 증명하기 위한 행위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행위를 할 때의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미 친구들의 손이 자신을 해하던 칼을 떨어뜨리고 피를 뿜던 상처가 흉터로 깊이 자리 잡은 후에야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던 내가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녀는 강제 입원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 옆에서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는 누구도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또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곳의 모두에게 삼촌이라고 불리던 아저씨가 계셨다.
과거의 대단한 영광도, 남들에겐 없는 희귀한 경험도, 훗날 이뤄낼 거창한 꿈도 참 많은 분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삼촌의 세상이 마치 게임 속 세상처럼 재미있어 늘 근처에 앉아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삼촌이 당시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내게 해줬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대부분 거짓이거나 과장이 섞여있었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가 지금까지 쭉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 하나만은 진실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환자는 당시 나의 엄마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던 아주머니였다.
환자들은 매일 병동 안에 있는 공용공간에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바깥으로 줄을 지어 함께 산책도 나가곤 했는데 그 아주머니의 웃음소리는 매번 아주 호탕해서 종종 간호사들의 웃음까지 터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유독 호탕했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환자복 하의로 침대에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했다.
병실을 순회하던 간호사들에게 발견되어 다행히도 미수에 그쳤지만 아주머니에겐 다행인 일이 아니었는지 발각되어 너무 아쉽고 다음엔 꼭 성공하리라며 역시나 호탕하게 웃었다.
성공과 실패 중 어느 쪽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지금쯤 어느 쪽으로 기울었기를 바라야 할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때 그 일에 실패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좋겠다.

당시 병동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 너무나 보고 싶지만,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아 잘 살아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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