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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21. 2023

싸게 머리가 좋아지고 싶은 심보

미용실 유목민이 되어 바라본 프리랜서에 대한 고찰 

10년을 따라다녔던 미용실 디자이너가 잠시 일을 쉰다 문자가 왔다. 내가 그녀를 신뢰하고 집에서 1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10년이나 찾아다녔던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요구나 어떤 질문에도 "제가 찾아볼게요!"라는 답변을 줬기 때문이다. 이머드(이 머리 드라이에요)라고 답하거나 이머추(이 머리 추가요금이에요) 같이 맥이 툭하니 빠지는 소리 대신에 하고 싶다는 머리에 최대한 가까운 머리를 찾아주거나, 전문가로서 나에게 어울릴 것 같은 머리를 최선을 다해 찾아주었다.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그녀가 떠난다는 소식과 함께 나는 다시 

미용실 유목민이 되었다. 슬퍼하고 있을 수만 없었다. 미용실 갈 때가 임박한 내 머리는 이미 묶어도 지저분한 봉두난발이기 때문이다. 더이 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뒷모습 예쁘다 싶으면 고데기용 머리 

일단 집 주변 미용실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많은 미용실이 있었나 싶게 정말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미용실들이 즐비해 있었다. 일단 1인샵은 모두 제외했다. 극 내향형 I인 나는 디자이너와 나, 둘 만 있는 숨 막히는 정막 속에서 나에게 집중하며 흘러갈 그 침묵 또는 억지스러운 수다의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 비싼 샵도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새치가 충만한 새치부자라 미용실 방문이 잦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새치의 주기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짧아지고 있기에 너무 비싼 브랜드 미용실도 목록에서 지웠다. 


역시 믿을 건 동네 공인 인플루언서, 맘카페 엄마들. 동네 맘카페의 미용실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미용실 원장은 커트는 잘하는데 펌이 형편없다고 하고, 어떤 미용실 실장은 회원권 팔기에만 열을 올린다고 했다. 이 것은 광고글이네 아니네 싸우는 사람부터, 홀연히 사라진 디자이너를 찾는 구구절절한 글도 있었다. 모두 미용실에 얽힌 제각각의 경험담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들이 추천하는 미용실도 모두 달랐다.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가격은 싸고, 머리는 보기 좋아지며, 펌과 커트 모두에 능숙한데, 친절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디자이너! 그런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도둑놈 같은 심보를 버리지 못하고 유토피아 속에 있을 법한 미용실을 찾는데, 갑자기 11년간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온 나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 10년 가까이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지난 경력까지 합치면 꽤나 경력이 묵직한 편이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프리랜서 작가는 늘 페이는 저렴하면서 글발은 훌륭하고, 

기획력과 필력을 모두 갖추었으며, 실무진과는 매끄러운 소통을 임원진에게는 날카로운 말발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촌철살인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 어디서 많이 보았던 것 같은 그 도둑놈 심보는 그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것들이었다. 

의뢰인 앞에서 그럼 니가 쓰던지라고 말하고 싶던 많은 날들 

어디 사이트에서 나보다 저렴한 작가를 보았다는 둥, 디자인 능력까지 갖춘 작가가 요즘은 널리고 널렸다는 둥 그럼 그 사람들이랑 일하지 나를 왜 이 자리에 불렀나 싶게 무례했던 그 들의 행태가 생각이 났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쌓아온 경력이라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는 시간으로 쌓아 올린 경험과 노하우를 살 때조차 싸면서도 질 좋은, 2인분 같은 1인분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무례한 언행들을 들을 때마다 적지 않게 속이 상했다. 나의 경험과 경력이 명품이 되지 못하고 다이소 매장 어딘가에 놓인 몇 천 원짜리 물건이 된 기분이 들었다. 싸게 머리가 예뻐지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있듯, 싸고 좋은 명품 카피를 갖고 싶은 마음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정받아야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래야 더 훌륭한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새로운 미용실을 예약했다. 아직도 싸고 좋은 머리를 갖고 싶은 심보야 버리지 못했지만, 내가 지불한 가치를 해내나 못해내나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지는 말아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쌓아온 만큼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 낸다면 기쁜 마음으로 보상을 하고, 그녀에게 또 오랜 시간 나의 머리를 맡기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나의 현재 또 미래의 의뢰인들이 나의 결과물에서 성실했던 지난 노력들이 느껴진다면, 나를 인정하고 내 작업물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느껴주길 온 우주에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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