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고단

당신이 할 수 있겠어? 근데 당신 누구?

by KH

2년 연속 임용시험에서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패배자의 감정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무엇을 해도 최종 점수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합격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있었고 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적을 두고 있던 학교 내 자리에 신규 교사가 발령받을 예정이었고, 나도 미련 없이 그 학교를 떠나고 싶었기에 다른 학교로 지원을 하였다. 조건 등을 재고 이곳저곳 원서를 넣고 면접을 봤어야 했지만, 나의 심리 상태는 그리 건강하지 못했다.


인력풀에 등재된 나의 정보를 보고 어느 중학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날 해당 교과는 나만 면접을 보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들 조건이 심상치 않아서 면접조차 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임용시험의 면접 준비, 심층 면접을 통해 지쳐있었기에 다른 학교 지원할 기력도 없었다. 부적격 사유가 없어 쉽게 합격을 했고, 출근 날짜 안내 문자를 받았다.


전 교사 출근일에 업무분장을 받고 같은 부서 부장과 업무 인수인계를 받던 중이었다. 순회교사로 다른 학교 두 곳에서 11시간의 수업을 해야만 했던 나는 비중 있는 업무를 맡을 수 없어 원로교사나 맡는다는 ‘환경’ 업무를 하게 되었다. 전임자에게 간단히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동안 부장의 눈길이 자주 나에게 닿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심이 한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못미덥스러운데…….’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말도 했다.


“이 일 해봤어요? 할 수 있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 있었겠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말이 신뢰감을 주지는 못했는지 전임자에게 끝없이 질문하고, 날 쳐다보고의 반복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행동과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3월 둘째 주 전입교사의 환영회가 있었다. 친목회를 대표하여 한 선생님이 기존 선생님들을 불러 모아 미션을 주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지는 눈에 빤했다. 5분이 지나고 꽃 한 송이씩을 들고 온 선생님들. “하나둘”을 외치며 전입교사들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나는 꽃 한 송이 받지 못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왠지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직감했나 보다. 되려 당황한 건 전입 교사에게 꽃을 건네준 후 자리로 돌아온 같은 부서 부장 선생님이었다. 어디에선가 남는 꽃을 급하게 가져와 전해주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어색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근무하고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급식 지도를 하던 중 학년 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디에서 겸임 나오셨어요?”


“사실 여기가 원적교이고, ○○고등학교로 수업을 더 많이 나갑니다.”


“아, 그래요? 어쩐지 순회 교사에게 급식 지도를 요청한다니 무슨 경우인가 싶었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입니다.”


“어? 그 유명한 ○○○선생님이시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농담으로만 치부하기엔 말에서 뼈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괴로워 “아, 그런가요.”라고 말을 흐리며 화제를 피했다.


복도를 걷다 보면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출현에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넌 누구냐’라는 시선을 던졌다. “○○교사 ○○○입니다.”라고 내 소개를 하고 나면 “아, 혹시 환경?”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느새 내 이름은 ‘환경’이 되었다.


원적교와 순회교 모두 ‘나의 자리’는 없었고, 그 해는 목표는 ‘공기처럼 있다 공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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