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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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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6. 2015

나를 얼마나 사랑해?

유자의 애정도 테스트

부질없는 짓이지만, 유자에게 가끔 애정도 테스트를 해본다. 방법은 단순하다. 두 사람이 적당히 떨어져 선 다음 동시에 유자 이름을 부른다. 밖이라면 유자를 사이에 두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뛰어간다. 유자는 가운데서 망설이는 법이 없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상처를 생각해 줄 법도 한데 언제나 망설임 없이 자신이 뛰어갈 방향을 고른다.      


테스트를 몇 번 해보니까 유자가 가진 애정의 크기가 얼추 그려졌다. 부동의 1위는 여동생이다. 유자를 데려온 사람이 여동생이라 그런지, 아니면 유자한테 짓궂은 장난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여동생의 애정도 테스트 승률이 제일 높다는 사실이다. 자기한테 쪼르르 뛰어온 유자를 안고 득의양양하게 나를 쳐다볼 때는 동생이지만 꽤 얄밉다. 나는 “네가 제일 만만해서 가는 거야”라고 깎아내려보지만, 어쩐지 나만 상처받는 느낌이다.      


2등에서 4등은 고만고만한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당연히 내가 2등이라고 강한 반박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셋 중에서는 내가 가장 순위가 높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세 사람의 순위가 헷갈리는 이유는 결국, 유자가 일관된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에 등산 갈 낌새가 보이거나 저녁에 배가 고프면 아빠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지만, 가족들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엄마 배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가 하면 놀이 상대가 필요하거나 밤에 졸리면 내 곁으로 온다. 한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기보다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예뻐해 줄 사람을 고른다. 개는 충성심이 강한 동물이지만, 푸들은 그 이상으로 영악한 동물이다. 유자는 푸들 중에서도 좀 더 영악하지 않을까 싶다.     


부동의 꼴찌는 남동생이다. 유자는 남동생 앞에서 사나워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남동생도 유자의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대놓고 유자를 예뻐하는 편도 아니어서 애정도 순위 같은 건 관심도 없을 거다. 그 녀석도 나름의 방식으로 유자를 사랑해주겠지만, 자신의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지는 않는다. 우습게도 테스트에 관심 없는 남동생만이 무패를 기록 중이다. 아예 테스트에 참가조차 하지 않으니까.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되, 상대의 애정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이건 어떤 사랑을 하든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인데 실천은 어렵다. 항상 어리게만 보이는 남동생이지만, 가끔은 배울 점도 있다. 물론 그 녀석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말이다.       


애정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상대에게 가진 애정이 크면 클수록 상대의 마음도 확인하고 싶어 진다. 연인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끊임없이 사랑의 크기를 재는 질문들이 오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던지는 그 질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옭아맬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사람 없는 길가에서 나와 여동생이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면, 유자는 곧 한 사람을 따라 달리지만 금방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낑낑대는 소리를 내면서. 유자는 두 사람을 다 사랑한다. 잘 알면서도 애정도 테스트를 핑계로 너무 괴롭혔나 싶다. 그런 의미로, 유자에게 하는 애정도 테스트는 그만둬야겠다. 내가 자꾸 져서 그만하겠다는 건 아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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