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행복의 상관관계
유자는 하나지만 유자의 냄새는 여러 가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른 냄새를 품고 있다. 등과 배에서는 아기 같은 냄새가 나고, 눈물과 항문낭에서는 쿠리쿠리한 냄새가 난다. 정수리 부분에선 조금 진하고 콤콤한 냄새가 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유자 몸에서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난다. 유자가 오랫동안 배를 깔고 누웠던 이불에도 따뜻한 유자 냄새는 남는다. 요샌 유자의 냄새를 들이마실 때만 적극적으로 코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좀 이상한 고백이지만, 유자의 냄새 중 가장 유혹적인 건 발 냄새다. 까맣고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에선 살짝 꼬릿한 냄새가 난다. 고린내 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중독적인,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다. 열심히 산책을 다니면서 지저분한 것들을 많이도 밟았을 텐데, 그런 것쯤 개의치 않게 될 정도로 나는 유자 발 냄새가 좋다. 내 발바닥은 별로 쳐다보고 싶지도 않지만 유자 발은 냄새 맡지 못해 안달이다.
끝까지 적응하기 힘들었던 냄새는 유자 화장실 냄새와 항문낭 냄새다. 유자 화장실은 내 방문 바로 옆에 있다. 깨끗한 신문지와 새 패드를 깔아준 직후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유자가 몇 번만 오줌을 갈겨도 강한 암모니아가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항문낭은 훨씬 더 강력한 냄새를 가졌다. 영역 표시를 위한 물질이라지만 집에서 사는 개들은 사람이 가끔 짜내 줘야 한다. 처음 항문낭을 짜냈을 때는 무슨 냄새인지 궁금해서 코에 갖다 댔는데, 기겁을 했다. 욕지기가 올라오는 냄새다. 신기한 건 그런 냄새들도 지금은 그냥저냥 참을 만 하다는 점이다.
유자의 체취는 확실히 향기보다 냄새에 가깝다. 발, 머리, 눈물 냄새까지 단번에 사람을 기분 좋게 하지는 못한다. 유자를 데려온 지 얼마 안됐을 때는 예상보다 강한 체취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날이 습해지면 아빠는 유자를 보고 “개 비린내가 왜 이렇게 심하냐”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타박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자는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참 많이 달라졌다. 나는 발 냄새를 좋아하게 됐고, 아빠의 대사는 “어이구, 우리 유자 아빠랑 목욕하자.”로 변했다.
애정이 냄새도 미화시키는 힘을 가진 줄은 몰랐다. 그 덕에 내 코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아무래도 사람한테는 코보다 중요한 감각기관이 많다. 더군다나 나는 비염이 있다. 후각도 둔해질 뿐 아니라 환절기마다 제 기능을 못한다. 심지어 콧대는 낮고 코끝은 뭉툭하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해도, 심정적으로는 코를 홀대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자 앞에서는 <향수>의 그르누이라도 된 것처럼 깊은 숨을 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에게 마들렌이 있다면, 내게는 유자 냄새가 있다.
감각의 확장은 기억의 확장이다. 나는 코로도 유자를 기억한다. 포근하고 따뜻한 털 냄새도 유자를 생각하게 하고, 짜릿한 암모니아 냄새도 유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기억의 매개체가 되는 많은 냄새 중에 ‘나쁜’ 냄새는 없다. 유자가 내뿜는 날것의, 살아있는 냄새 하나하나를 온전히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는 냄새가 늘어서 좋은 기억이 늘고, 좋은 기억의 반추는 행복을 재현한다. 길게 누운 유자 옆에서 숨을 깊이 들이쉬면, 행복이 이렇게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