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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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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9. 2015

질투는 너의 힘

언제나 산뜻하게 사는 비결 

유자를 데리고 애견카페에 간 적이 있다. 카페에서 키우는 개들과 다른 손님들이 맡겨놓은 강아지들이 뒤섞여 뛰어노는 장면이 예뻤다. 유자도 처음에는 쭈뼛거리더니 이내 다른 강아지들의 냄새를 맡아가며 무리에 섞여 들었다. 나와 동생은 자리에 앉아 얘가 귀엽네, 쟤가 순하네, 그래도 유자가 제일 예쁘네 따위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종종 다른 개들보다 우리한테 관심을 보이는 강아지들이 있었다. 아마 주인을 며칠이나 만나지 못해 사람 손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나는 까만 푸들 한 마리를 무릎에 올려 쓰다듬어줬고, 동생은 늙은 시추를 가만히 보듬었다. 그때였다. 유자가 맹렬히 달려오더니 동생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어린 개의 몸통 박치기에 늙은 개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시추는 끅끅대며 토했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카페 직원이 뛰어와 바닥을 닦았고, 우리는 사과했다. 직원은 바닥이야 닦으면 되지만 시추가 나이 많은 할머니라 걱정이라고 했다. 더 있기 미안해진 우리는 유자를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욕하며 황급히 나왔다.     


유자는 알면 알수록 질투가 많다. 산책을 할 때도 우리가 다른 개를 쓰다듬는 꼴을 못 본다. 다른 개 앞에 쪼그려 앉기만 해도 높은 소리로 짖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으니 이제는 시도조차 못한다. 개만 질투하는 것도 아니다. 책이나 스마트 폰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작은 앞발을 눈앞에 턱 내민다.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며 유자를 쳐다보면 귀여운 척 배를 확 깐다. 건성으로라도 한 번 긁어 드리지 않으면 또 짖는다.     


더 웃긴 건 내게도 질투를 종용할 때다. 유자는 간식에 맛 들려서 사료를 부어줘도 바로 먹지를 않는다. 하지만 내가 제 밥그릇 옆에 앉아 사료 먹는 시늉을 하면 바로 달려와 와구와구 먹기 시작한다. 개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위해 개밥 훔쳐먹는 연기까지 해야 하다니. 관심 갖지 않던 개껌이나 장난감도 누가 만지려고 하면 새삼스럽게 좋아 보이는지 제가 챙겨간다. 나는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동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유자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분명히 ‘질투’일 거라고 확신한다.     


사람이라면 참 친구하기 싫은 성격이다. 어떻게 하루 종일 너만 바라보니, 어떻게 네 걸 다 부러워해줘야 하니 라면서 싸우고 싸우다 슬쩍 멀어질 법한 캐릭터다. 질투라는 건 그렇게 피곤한 감정이다. 하는 입장도, 당하는 입장도 피곤하다. 하지만 유자는 피곤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부정적 감정들이 결코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질투로 내일까지 괴로워하는 일이 유자에겐 없다. 순간을 사는 개와 미래를 놓지 못하는 인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질투도 짜증도 현재의 한 순간만 불타오르게 하고 사라질 뿐, 다음 순간의 유자는 다시 백지가 된다. 순간을 산다면 질투마저 산뜻하다. 언제나 피곤한 쪽은 미련 많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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