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산책이 최고
집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산의 이름은 구름산이지만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다. 우리 동네 초등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일 정도로 부드럽고 포근한 '동네 뒷산'이다. 나도 이 동네에 산 지 20년 정도 됐으니까, 꽤 여러 번 구름산 정상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어릴 적엔 온 가족이 주말 등산을 가기도 했고, 초등학교 소풍의 기억도 진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이후에는 가족 등산도 흐지부지됐고, 소풍도 더 먼 곳으로 가게 됐다. 구름산은 여전히 우리 집 뒤에 소담스럽게 서있었지만 난 그 산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 여름마다 산 때문에 벌레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짜증을 좀 냈는데 그게 유일한 관심이었다. 유자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지금 구름산은 유자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 코스다. 어딜 데려가든 밖에 나가기만 하면 좋다고 방방 뛰는 유자지만, 산에 갈 때는 유난스러울 정도다. 집에서는 '웃는' 표정을 잘 보여주지 않는데 산길 초입에만 들어서도 입을 벙싯벙싯 벌리며 헥헥거리고 웃는다. 입꼬리도 묘하게 올라간 듯 보여서 사람이 웃는 표정과 흡사하게 보인다. 개도 웃음에 대한 자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즐거운 것만은 분명해 보여서 산에 점점 더 자주 오르게 된다.
나는 구름산을 코 앞에 두고도 잊고 살았지만, 지금은 유자가 좋아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꽤나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개를 데리고 산다는 건 개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과 마음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개의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때 구름산은 나의 세계에서 빠져나간 장소였지만, 유자와 함께 산책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구름산을 되찾았다. 새와 벌레들이 내는 소리가 새삼스럽게 귀에 들어온다. 흙길을 밟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온 감각을 발에 집중하게 만든다. 유자처럼 맨발로 흙길을 걷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신발을 벗고 걸은 날도 있었다. 산이 주는 평화로움에 감사하려면 지금 내 나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보다.
이제 가끔씩은 유자가 좀 피곤해 보여도 내가 산 쪽으로 산책 코스를 잡는 날도 있다. 유자가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가끔씩은 산에 오를 것 같다. 그때에는 어린날의 소풍보다 유자를 훨씬 많이 생각하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아니 가급적 오랫동안, 등산은 유자와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