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난 사람들
나 혼자 동네를 돌아다닐 때는 누구도 먼저 와서 말을 거는 일이 없다. 나 역시 행인을 오래 쳐다보거나 붙잡고 말을 거는 경우는 없으니까. 하지만 유자와 함께 나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산책하는 강아지와 주인’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 가만히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유자와의 산책이 가져다주는 재미다.
유자한테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건 역시 어린아이들이다.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멈무이’를 부르는 경우도 있고, 보호자들이 “저기 강아지 있다”며 아이의 주의를 끄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격한 관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종종걸음으로 유자를 끌고 왔는데 요새는 좀 느긋해졌다. 뛰어와서 만지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면 인사도 해주고, 천천히 아이 주변을 오래 걸으면서 유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작별인사는 언제나 비슷한데, 손을 흔들며 “멈무이 안녕~”이라고 말해줄 때가 제일 많다.
그 다음으로 자주 말을 섞게 되는 건 비슷한 시간대에 산책을 나온 견주들이다. 이 때는 보통 사람보다 개들이 먼저 난리를 친다. 서로의 냄새를 맡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도 있고,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왕왕 짖을 때도 많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될 때는 주인들도 느긋하게 개가 몇 살인지, 이름은 뭔지 물어보며 얕은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자도 다른 개들도 격렬히 짖기부터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견주들과는 대화보다 서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자기 개의 목줄을 황급히 끌고 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요즘 개들은 사회성이 부족해서 참 문제야’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학생 무리와 마주치면, 그 애들이 유자를 보고 한 마디씩 할 때가 있다. 학생들은 꼭 여러 명이 뭉쳐 있을 때 유자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 같다. 여학생들의 대사는 보통 귀엽다, 인형 같다, 키우고 싶다 정도다. 절대 나한테 말을 거는 건 아니고 자기들끼리 까르륵 댄다. 어쨌든 유자 칭찬이니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남학생들은 이상하게 ‘멍멍’ 소리를 내며 유자와 직접 소통을 시도할 때가 많다. 대화를 하고 싶은 건지 도발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기엔 되게 웃기다.
아주 아주 가끔씩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몇 번 구시렁거리는 걸 봤다. “왜 개를...”, “여자 혼자 개를...”. 내게 뭔가 말을 했다면 나도 비슷한 말로 돌려 드렸겠지만 혼자서 불평하는 건 그냥 무시한다. 여동생은 혼자서 유자 산책을 시키다가 약주 한 잔 걸치신 아저씨에게 욕 먹은 일이 있다. 내용은 역시 왜 개를 데리고 다니냐는 밑도 끝도 없는 시비였다. 잘못한 건 없지만 그 후로 동생은 혼자 산책을 나가지 않는다. 이런 불쾌한 일의 빈도수는 가장 적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법이다.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눈에 띄는 모양이다. 칭찬이든 불평이든 개는 좀 더 쉽게 상대의 말문을 열어 준다. 때로는 불편하지만 소소한 재미로 기억할만한 일이 훨씬 많다. 덤으로 유자 덕에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저녁에도 유자와 함께 산책을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