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는 물어요
사실 유자는 버릇이 잘못 든 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손을 장난감처럼 물고 놀아서인지, 지금도 제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이빨부터 드러낸다. 버릇을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예뻐하는 일과 다르게 훈육은 온 가족이 일관성 있게 해야 하는 일이라 더 어려웠다. 누가 유자를 혼내기라도 하면 유자는 다른 사람에게 파고들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쟤가 나 혼내, 나 예쁘니까 보호해 줘.”라고 말하는 유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혼내던 사람마저도 마음이 풀어지는 광경에 그저 웃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고, 유자는 그렇게 버릇없는 개가 됐다.
완연히 강아지였던 시절에는 개의 이빨이라고 해봤자 조그맣고 귀여울 뿐이었다. 아무리 물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이빨이었다. 유자의 무는 버릇을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한 건 이갈이 이후의 일이다. 한결 크고 뾰족한 이빨들이 새로 자랐고, 유자의 턱 힘도 세졌다. 작은 푸들이라고 해도 짐승은 짐승이다. 봉제 인형들도 쉽게 뜯어 솜뭉치를 흩어 놓기 일쑤였고, 딱딱한 개껌을 아작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도 그때부터 피를 보기 시작했다. 다섯 식구 모두 유자에게 물려 피를 본 경험이 있다. 가장 처음 물린 사람은 나였다. 간식을 주고 있었는데, 먹고 나서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손을 콱 물었다. 황급히 손을 빼냈지만 이미 상처가 나서 피가 나고, 붓고, 열이 나고 있었다. 엄지 손톱도 약간 깨지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옆에 있던 쿠션을 던지며 뭐라 뭐라 욕을 했다. 이미 유자는 제 집에 쏙 들어간 후였다.
처음엔 다른 가족들이 믿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물렸을 거라나. 하지만 다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리기 시작했다. 산책 가려고 목줄을 채우다가, 무릎에 와서 앉기에 쓰다듬어 주다가, 밥을 주다가, 간식을 들고 ‘손’ 훈련을 시키다가. 마지막까지 물리지 않은 건 아빠였는데, 아빠는 그 사실을 은근 자랑스러워하며 유자가 자신만은 절대 물지 않는다고 호언 장담했다. 급기야 유자를 앉혀 놓고 “유자야 아빠는 안 물 거지?”라고 말을 걸며 개의 입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때 물렸다. 아주 세게.
한 명도 빠짐없이 피를 흘린 이후에야 우리 가족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개의 습성이나 특징에 대해 공부하려는 자세가 갖춰졌다. 개와 함께 사는 일은 단순히 예뻐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고, 수의사에게 물어보고,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우리의 어쭙잖은 지식과 태도 때문에 사람은 피를 보고, 개는 불안을 느낀 셈이었다. 개의 눈앞에서 손을 펼치거나 사람의 얼굴을 들이미는 게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든지, 귀 끝이나 꼬리를 만지는 걸 싫어하는 개가 많다든지 하는 잡다한 지식들을 그때 많이 습득했다. 몇 가지만 주의해도 확실히 유자한테 물리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 우리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유자는 여전히 이빨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길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 아주 관대한 개다. 가족들도 전보다 유자의 기분에 신경을 쓰며 살아간다. 어떻게든 개를 서열의 맨 끝자리로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자는 사람은 없었다. 유자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 서열을 따지지 않는다면 유자에게도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개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최소한 우리 집에서 유자는 모두와 동등한 가족 구성원이다. 내 손에 남은 흉터 위에 또 상처를 내더라도, 유자는 우리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