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행동을 요구한다
푸들처럼 귀가 축 처진 개들은 귓병에 걸리기 쉽다. 유자 귀에도 몇 번 염증이 생겨 고생을 했다. 귓병이 나면 귀 안쪽부터 빨갛게 부어오르고, 냄새가 심하게 난다. 귀지의 색도 검붉은 색에 가깝게 변한다. 귀가 길게 늘어져 귓구멍을 덮고 있는데다가, 귀 안팎으로 털도 나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주 귀를 들춰봐야 한다. 잠깐 방심하면 어느 샌가 유자는 뒷다리로 귀를 벅벅 긁고 있다. 그날부로 2~3주 정도는 동물병원에 열심히 출근도장을 찍어야 한다.
귓병이 재발하기 쉬운 흔한 병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귀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컸다. 유자가 어릴 때는 귀 청소하는 것조차 너무 조심스러워서 귀지를 제대로 닦아주지 못했다. 귀 닦는 약을 들고 부들부들 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털 깎을 때 귀 청소도 같이 맡겨버렸다. 유자도 귀 닦는 걸 너무 싫어해서 쉽게 포기하게 됐다. 못해도 일주일에 두 번쯤은 귀 청소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자꾸 병이 재발했다.
같은 문제로 동물병원에 세 번쯤 방문하니, 수의사 선생님도 주인인 나를 은근히 혼내기 시작하셨다. 유자를 봐주시는 수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말이 없으신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게는 별 말을 안 하신다. 대신 아픈 동물에게 필요한 말이라면 강한 어조로 오래 말씀하신다. 매달 심장사상충 약을 바르러 가도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5분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귓병 때문에 30분 정도 조언을 들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미 처치가 끝난 유자의 귀에 굳이 겸자와 탈지면을 다시 들이대시며 내게 귀 닦는 요령을 가르쳐주셨다. 모니터 너머 사진 몇 장으로 본 과정과는 차이가 좀 있었다. 세정제가 좀 남아있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안심이 됐고, 개가 놀라지 않도록 목 부근을 부드럽게 잡은 자세에도 눈길이 갔다. 마지막엔 “귓병은 집에서 잘 관리해주는 수밖에 없으니, 유자를 사랑하면 귀는 꼭 잘 닦아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이후에 귓병으로 병원을 찾은 적은 아직 없다.
유자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마음뿐이었다. 마음으로 아끼고 말로 사랑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은 행동을 요구한다. 귀 닦자는 말에 유자가 기겁을 해도 나는 귀를 닦아줘야 한다. 물론 사랑에도 요령은 있다. 간식과 산책이라는 당근으로 유자의 마음을 여는 게 내 사랑의 요령이다. 이 사랑의 방식이 유자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사랑할 수 있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방금 살짝 들춰봤더니, 유자의 귀가 뽀얗다. 이제야 나는 유자를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