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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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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2. 2015

꼬리로 말해요

너만큼 솔직할 수 있다면

꼬리는 정직하다. 아무리 크게 짖고 있어도 유자의 꼬리가 팍 내려가 있다면, 얘는 지금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무심하게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려도 꼬리가 한껏 솟아 동그랗게 말려 있다면, 유자는 기분이 꽤 좋은 상태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근처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내려가는 꼬리가 귀엽다. 다시 집 근처로 돌아오면 위풍당당하게 치솟는 꼬리가 얄미우면서도 예쁘다.     


산책도 할 겸, 밤늦게 오는 엄마를 마중 나가면 어느 순간 유자의 꼬리가 좌우로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를 발견한 모양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려가며 저기 오는 사람이 엄마가 맞는지 가늠해봐야 하지만, 유자의 꼬리는 이미 확신에 차서 흔들리고 있다. 엄마와 내가 서로를 알아볼 때쯤이면 유자는 꼬리를 흔드는지 엉덩이를 흔드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엄마를 사랑해도 유자만큼 훌륭한 환영 인사를 해주기는 힘들 것 같다.      


사람은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개들에게도 표정은 있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표정이 꽤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보다 솔직한 표현은 꼬리로 한다. 기쁨, 환영, 공포, 경계까지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꼬리로 표현한다. 여기서 앞의 문장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정말 그럴까? 나이가 들수록 기쁜데 웃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 못하는 순간을 많이 겪게 된다. 나만 그럴 리는 없다. 사람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다. 유자를 보면 종종 ‘사람도 꼬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자의 꼬리만큼 솔직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정확히 말하면 ‘유자만큼 솔직해도 유자처럼 사랑받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감정을 그대로 내비치는 인간은 금방 미움 받게 될 확률이 크다. 서로서로 가식과 포장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가면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그저 힘차게 흔들리는 유자의 꼬리를 보며 대리만족이나 느낄 뿐이다.         


혹시 유자에게도 숨기고 싶은 감정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할 때가 있는 것처럼 유자도 흔들리는 꼬리를 멈추려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본 일이 있을까? 아니면 속마음과 다르게 과장된 꼬리 흔들기를 선보인 적도 있을까? 유자에게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너무나도 인간다운 질문이라 할 말이 없나 보다. 꼬리는 미동조차 없다. 얌전한 꼬리가 ‘한심하다’는 뜻으로 읽히는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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