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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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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20. 2015

새벽 순찰

우리 식구들 잘 자나?

깊은 새벽에 서걱서걱 소리가 들린다. 나무로 된 방문을 긁는 소리다. 닫힌 문을 열어달라는 유자의 신호다. 또 누군가 문을 닫아두고 잠들었나 보다. 서걱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문이 열릴 때까지 유자의 발톱은 끈질기게 새벽을 긁는다. 방문 안에 있는 사람의 안위를 확인하기 전까지 유자에게 포기란 없다. 결국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을 일으키고야 만다. 문을 열어주면 침대로 사뿐히 뛰어 올라가 나름대로 뭔가를 살핀다. 마음이 흡족해지면, 다음 방으로 순찰을 떠난다. 그런 새벽이 지나가면 아침엔 “유자 때문에 새벽에 또 깼다”는 대화가 오가지만, 누구도 기분 나쁜 말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유자는 새벽마다 꼭 한 번씩 깨어난다. 아주 어릴 때는 낮이나 밤이나 세상 모르고 자더니 두 살쯤 됐을 때 새벽 순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군데서 잠들지 못하는 유자를 보며 뭔가 불편한 건지 걱정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요새는 당연히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잠자리에 든다. 바람에 문이 닫히기라도 하는 날엔 당연히 밤중에 한 번은 일어나야 한다. 유자의 행동방식에 따라 사람의 생활패턴을 조금씩 바꾸는 일도 이제는 당연하다.      


늦게 자거나 얕은 잠을 자는 날이면 졸음 속에서 순찰 도는 유자의 발소리를 듣는다. 타닥타닥, 발톱이 장판에 부딪히는 소리도 새벽엔 선명하다. 발소리는 식구들의 방을 차례로 방문한다. 순찰이 끝나면 비로소 제 마음에 드는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잔다. 식구들의 편안한 밤을 지켜주려는 강아지의 마음이 귀엽다. 제가 모두를 지킨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귀엽다. 유자에게도 가족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개의 마음을 확신하기란 같이 사는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우리 가족들이 유자를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유자도 우리 가족의 편안한 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실은 겁도 제일 많은 주제에.        


아마 우리 가족의 편안한 잠, 좋은 꿈, 포근한 아침은 모두 유자가 지켜봐 준 덕에 가능할 것이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순찰을 도는 정성은 쉬운 게 아니니까. 잠든 나를 살펴봐주는 시선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따뜻한 일이다. 내게 필요한 다른 일은 모두 내 힘으로 할 수 있어도, 그것만은 다른 이의 몫이다. 오롯이 유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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