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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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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26. 2015

행복을 기다림

유자가 제일 오래 하는 일

또 쳐다보고 있다. 고개를 홱 돌리면 열에 아홉은 까맣고 땡그란 유자의 눈을 마주치게 된다. 내가 어딜 가있든 유자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나를 쳐다본다. 반려견답다고 해야 할지, 유자는 사람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편이다. 요즘 주로 집을 지키는 건 나니까 자연히 유자도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정말 귀엽다. 귀엽긴 한데, 때로는 감시당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유자랑 눈이 마주치면, 괜히 찔려서 하던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유자는 내 일의 효율성을 올려주려는 좋은 개다.     


가끔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바라보거나 제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곧 다시 돌아와서 제 시야에 나를 놓아둔다. 쳐다봐도 별로 재밌지 않을 텐데, 왜 항상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게 유자를 안심시켜 주는 모양이다. 아니면 나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화장실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문 앞 깔개에 얌전히 앉아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유자는 누나의 변비를 염려하는 착한 개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
빨리 칭찬 좀 해줘봐!

어쩌면 저 인간이 언제 간식을 주나, 혹은 언제 놀아주거나 산책을 나갈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 이게 정답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자가 나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내가 유자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명 같지만 나는 유자보다 할 일이 많다. 봐야 할 책들과 써야 하는 글, 해야 할 집안일과 나가야 할 일들이 꽤 쌓여 있다. 굳이 ‘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걸 보면, 내게는 역시 인간의 생활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보다. 유자에겐 가족들이 전부인데, 사람에겐 개가 전부일 수 없어서 조금 미안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좋은 일을 기다리며 사람을 바라보고,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잠깐씩 자는 시간이 유자의 하루를 거의 채우고 있다. 인형으로 신나게 노는 시간 삼십 분 남짓, 간식을 얻어먹는 건 하루에 두세 번, 고대하는 산책은 길어야 한 시간이다. 이것저것 끼워다 넣어도 하루 중에 유자가 행복하게 보내는 시간은 다섯 시간을 넘지 못할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자신이 없다. 차라리 유자가 혼자 놀 줄 안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든다. 조금 덜 기다리게 하려면 내가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겠다. 유자는 역시 누나의 게으름까지 없애주려는 참 멋진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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