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
개요: 드라마/ 한국
개봉: 2015. 09. 16.
출연: 송강호(영조), 유아인(사도세자), 문근영(혜경궁 홍씨)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재위 기간 내내 왕위 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기만 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합니다.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됩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세자 이선은 사병들과 함께 칼을 들고 아버지 영조가 있는 침전으로 침투합니다. 하지만 차마 방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무위로 끝납니다. 하지만 칼을 들고 침전에 침투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이 되자 영조는 직접 세자를 불러 그에게 처벌을 합니다.
관모와 관복을 벗게 하고, 세자가 만들어 놓은 무덤 속에서 관과 칼 등을 꺼내와 보여줍니다. 아들 세자가 영조 자신을 죽이려고 이렇게 미리 다 준비해 놨다는 것에 대해 대로하게 되지요. 그런 후 세자에게 칼을 던져주며 자결을 하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세자는 자결하라는 처벌도 있느냐며 차라리 의금부로 넘기라고 소리칩니다.
“이건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 집안일이야. 아비를 죽이려고 한 아들에 대한 형벌이야! 자결하라”
세자는 칼을 들고 자결하려고 하자, 그를 따르던 신하들이 우르르 달려와 칼을 막고 그의 몸을 감싸며 임금에게 용서해 달라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세자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미친 듯이 발광을 합니다.
그러자 영조는 당장 뒤주를 가져와 그 안에 가두라고 명하고, 자신이 직접 못질을 합니다. 이때 세손이 달려와 임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합니다. 그러자 영조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 봅니다.
아들 사도세자가 어렸을 때 사치라 써놓은 글을 보고 영조가 물어봅니다.
“그래 무엇이 사치고, 무엇이 사치가 아니더냐?”
“비단 이것은 사치고, 무명 이것은 사치가 아니옵니다”
이렇게 세자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똑똑했답니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세자를 평민으로 만드는 교지를 써오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하들이 쑥덕거리는 말로 ‘그냥 사약을 내려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다른 신하가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자가 역적이 되고, 아들이 역적이면 그 아비도 역적이 된다네. 그게 명나라 형법을 따르는 조선의 국법이야”
아무도 교지를 쓰려고 나서지 않자, 영조는 자신이 직접 교지를 씁니다.
“세자의 타고난 자질이 훌륭하여 내 기뻐하고 사랑하였으나, 10여세부터는 공부에 태만하였고 대리청정 이후에는 병이 생겨 음란과 패악을 일삼으니, 병증이 심할 때는 본성을 잃고 내관을 죽이기까지 하였고, 박수, 비구니, 기생들과 주야로 놀면서 대전에는 문안조차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궐 후원에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차마 말할 수 없는 짓을 행하려 함에, 세자의 생모인 ‘영빈’이 고하기를, 과인의 목숨이 화급 지간에 있다며 대처분을 청하였다. 이에 세자를 폐하여 평민으로 삼아 가두노라”
다시 과거로 돌아가, 영조는 공부를 게을리하는 세자에게 심하게 문책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놀이는 한 때의 맛이요, 공부는 평생의 맛이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이렇게 되자 세자는 서서히 자존감이 죽고, 자신감이 떨어지며 기가 죽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다정다감하고 칭찬과 인정이 아니라 냉철하게 더 완벽한 사람이 되길 원할 때 그 아들은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마음에 큰 병을 얻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가에서는 자녀를 자애를 기른다. 하지만 왕가에서는 자녀를 원수처럼 여긴다 했다”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의 본심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
“다르다. 난 여기 종묘에 올 때마다 조상들의 피 울음 소리를 듣는다. 여기는 자식이나 형제, 부인, 조카까지 죽이고 종사를 지킨 임금들도 계시다. 왕가에서 자식을 원수처럼 기른다는 뜻을 알겠느냐? 네가 왕이 되면 알 것이다”
그러다 영조는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선위 파동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본심과 관계없이 신하들은 무조건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며 반대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고 잘 됐네요. 이번 기회에 자리에서 물러나 편히 쉬시지요” 이렇게 찬성하다가는 임금이 그를 파면시키고 귀양을 보내거나 죽일 수도 있습니다. 선위 파동은 신하들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 임금이 쓰는 마지막 카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반대를 외치니 임금이 그럼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자는 영조 대신 국정을 맡아 결정하는 대리청정을 하는데, 처음부터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세자의 총명함에 깜짝 놀랍니다. 이때라도 끝나고 났을 때 아버지 임금이 아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인정해 주었으면 서로 잘 됐을 텐데, 영조는 잘한 것은 당연하고, 잘못한 것만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넌 왜 신하들을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느냐, 넌 아비가 지금까지 쌓아온 탕평책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거야.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야”
다음 날, 조회 자리에서 신하들의 상소에 세자가 윤허를 하자, 뒤에 앉아 있던 영조가 그 결정에 바로 태클을 걸고 들어옵니다.
“잠깐, 내가 예전에 결정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아니더냐? 그런데 그걸 네 마음대로 옮기면 내 입장이 뭐가 돼? 네가 국방에 대해 뭘 알아? 함경도 가 봤어? 앞으로 중요한 일은 나에게 아뢴 뒤에 결정해”
이렇게 말하자 세자의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어디에 기준을 두고 움직이고 말해야 할지 모르게 되면서 극도의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리더는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조를 통해 잘못된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일을 맡겨두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면 안 됩니다. 큰 그림을 보고 작은 결정들에 대해서는 믿고 맡겨주는 것이 필요하고, 잘한 것에 대해 중간중간 칭찬과 인정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리더 입장에서 아랫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기는 뒷방 늙은이로 취급받는 생각이 들어 자꾸 나서게 되면 둘 다 죽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러다 신하들이 다른 내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세자는 이제 어떤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겁을 냅니다. 그러다 뒤에 앉은 아버지 영조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묻습니다. 그러면 자상하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야기를 해 주면 될 텐데, 또한 번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호통을 치며 기를 죽입니다.
“그만한 일도 혼자 결단치 못하고 나를 번거롭게 하다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수어청에 호조로 쌀을 보내고, 호조도 수어청에 은을 갚으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 능행 행차길에, 갑자기 세자를 불러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전라도로 내려가는 이의경에게 ‘독서가 가장 즐겁다’는 시를 써줬다며? 너 같은 게 어찌 독서가 가장 즐겁다 할 수 있느냐? 너는 이의경을 속였을 뿐 아니라 호남 사람 전부를 속인 것이다. 네가 그 따위로 거짓말이나 하니, 가뭄에 시달리는 호남지역에 내려야 할 비가 이 거룩한 능행길에 내리지 않느냐? 너 앞으로 내 앞에서 솔직한 척하지 마라. 너는 숙종대왕의 능에 참배할 자격이 없다. 썩 돌아가라”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면서 아들을 구박합니다. 이러면 아들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걸 자꾸 더 인정받기 위해, 상대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깔아뭉개는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자기가 어릴 적부터 그렇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았기에 지금 이렇게 해서라도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겁니다. 이게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영조도 자신이 무수리 출신에다가, 형을 독살하고 왕이 되었다는 소문 때문에 자존감이 무척 낮은 상태입니다. 이러면 당하는 사람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고 기를 펴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영조는 물을 떠 주던 무수리 하나를 건드려 임신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무수리는 나이도 어린것이 자신이 영조의 아이를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세자의 생모 영빈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대비마마가 그녀를 불러 회초리를 칩니다. 그때 영조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칩니다.
“뭐하는 짓이야?”
그러자 대비는 “중전의 환갑이 낼 모랜데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주상의 뜻이오? 저년의 뜻이오? 저년이 같은 후궁의 처지로 중전의 환갑을 챙겨주자는 그 마음을 배우지 못할망정, 방자하게 영빈에게 대들었다기에 내가 어명부의 법도를 세웠소”
“대비께서 이러시면 저는 더 이상 임금 노릇 못합니다”
“저 천한 것 뱃속에 주상의 씨앗이 들었다고 역성을 드는 것이오?”
“천해요? 그럼 천한 저를 임금으로 만든 건 대비시니, 이 참에 제 임금 자리도 거두시오. 세자에게 보위를 넘길 테니 윤허하세요”
“예 그럽시다. 윤허하지요”
이렇게 되자, 영조는 또 한 번의 선위 파동을 일으킵니다. 그러자 세자는 아무 죄도 없이 눈이 펑펑 내리는 차가운 대궐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석고대죄를 합니다. 중전은 대비에게 달려가 ‘이러면 세자가 죽는다’며 윤허를 거두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말을 들은 대비는 자신이 죽어야 되겠다며 수라를 들이지 말라며 단식을 선언합니다. 그러다 결국 대비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세자는 미칠 것 같은 분통에 박수무당을 찾아가, 제를 지내며 미쳐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기생에게 찾아가 술을 마시며, 이건 술이 아니라 할머니가 흘린 피눈물이라며 술을 으득으득 씹어 먹기도 합니다.
그러다 임금이 찾는다는 말에 의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급히 궁궐로 들어갑니다. 임금은 세자를 보자마자
“대비마마와 중전이 돌아가신 걸 핑계로 며칠 째 대리 청정도 하지 않으니, 내가 너에게 문안드리러 왔다. 공부는 아예 포기했구나. 그 옷차림이 뭐냐?”
이렇게 보는 것마다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습니다. 이러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리 없습니다.
“세자라는 작자가 상중에 술이나 퍼먹고, 지난달 병마절도사가 금주령을 어겨 참수된 것을 모르느냐?”
이때 옆에 있던 상궁이 세자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임금은 귀씻개 물을 가져오라 한 후, 거기에 자신의 귀를 씻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세자에게 퍼부어버리는 행동까지 합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행동입니다.
“내 잘못이다. 너 같은 인간은 자식이랍시고 세자로 세운 내 잘못이야”
이렇게 아들의 가슴에 못이 박히는 이야기를 하고서야 방을 나갑니다. 세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곁에 있던 신하들에게 역정을 냅니다.
“일개 아녀자도 목숨을 걸고 아뢰는데, 한 놈도 나서는 놈이 없어”
이 일로 세자는 점점 더 무너집니다. 궁궐 뒤에 만들어 놓은 무덤 안에서 굿을 하고, 자신은 관 속에 들어가 누워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새로 들어온 중전에게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옷을 입지 못합니다. 의대증에 걸린 것입니다. 이 옷을 입으면 임금을 만나야 한다는 두려움에 강박증이 생긴 것이지요.
임금은 세자의 스승 3명에게 세자의 폐위에 대해 상소를 올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스승 3명은 유서를 써 놓고 모두 자결을 합니다.
“전하께서는 기뻐하심과 노여워하심이 변화무쌍하여 무엇이 진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격노를 누르시고 세자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종사에 화기가 돌도록 하옵소서”
다른 신하들은 세자에게 간언 합니다.
“몇 년만 버티시면 저 용상에 앉으십니다. 공부하는 척하고 문안드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난 그렇게 살기 싫소. 나는 내 식대로 살겠소”
그러면서 자신의 생모 환갑상을 차려주면서 중전에 준하는 예로 4배를 하도록 세손과 모두에게 강요합니다. 생모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노론 측에서는 나경언을 시켜, 세자가 저지르는 비행과 함께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임금에게 고하게 합니다. 그 일로 임금은 세자의 비행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역모를 꾸민 것은 아닌데, 거짓 고발을 했다 하여 참수시키라 합니다. 이때 세자는 저놈을 죽이지 말고 배후를 조사해야 한다며 소리치지만 소용없습니다. 그러자 세자는 아버지 영조를 향해 소리칩니다.
“꼭 이렇게 자식을 역모로 몰아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넌 존재 자체가 역모야”
이 말을 들은 세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러다가, 비가 쏟아지는 밤에 호위무사들과 함께 칼을 들고 편전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영조와 세손이 대화하는 걸 엿듣게 됩니다.
“넌 어찌하여 영빈의 회갑연 때 4배를 하였느냐? 그건 왕과 왕비에게만 하는 예법이 아니냐?”
“전 할바 마마가 왕이 아니어도 백 배, 천 배를 올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예가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 하셨습니다. 그날 소손은 제 아버지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밖에서 그 말을 들은 세자는 칼을 내리고 하늘을 보며 울다가 그냥 돌아갑니다.
뒤주에 갇힌 지 7일째 되는 날, 영조는 세자에게 다가가 대화를 합니다. 실제 대화였는지 혼자 생각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너의 형 효장세자가 죽고, 내 나이 40이 넘어 네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기뻤으면, 핏덩이인 널 세자로 책봉하고, 2살 때부터 제왕의 교육을 시켰겠느냐? 그때 네가 보여준 총명과 슬기를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랬던 네가 칼 장난하고 개 그림이나 그리며 공부를 게을리할 때, 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신하들 앞에 허수아비처럼 앉혀 놓고 병신 만들었소?”
“너 제대로 된 임금 만들려고 그러던 것 아니더냐. 네가 실수할 때마다 내 가슴 얼마나 졸였는지 아니?”
"그게 왜 내 실수 때문이겠소? 아버지가 왕이 된 과정에서 신하들에게 약점 잡혀 전전긍긍한 것이지”
“넌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을 모르느냐? 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왕이 되지 못했다면 나는 그때 죽었다. 내가 죽었으면 너도 없는 거야”
“그걸 알기에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소. 하지만 당신이 강요한 방식은 숨이 막혀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소. 공부가 그리 중한 것이오? 옷차림이 그리 중한 것이오?”
“임금이 공부 모자라고, 대님 하나만 삐딱해도 멸시하는 것이 신하다. 이 나라는 공부가 국시고 예법이 국시야”
“내가 왜 그날 밤 당신을 죽이지 않고 그냥 돌아왔는지 아시오? 사람이 있고 공부와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공부와 예법이 사람을 옥죄는 국시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난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라는 건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길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 나는 자식을 죽인 아비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설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자식 앞에서 아버지 앞에서 무슨 권위가 필요하고 예의를 앞세운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 시대에는, 아니 지금도 이런 예의를 중시하면서 무서운 아버지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식들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8일 만에 뒤주에 갇혔던 세자는 죽고,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세손의 마음을 생각하고, 신하들의 뜻을 헤아려 세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그 시호를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라 하라”
그렇게 14년 후, “내가 네 아비의 기록을 지워주는 것은 너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함이다. 누구든 네 아비를 왕으로 추승하겠다 하는 자는 역적이다. 이것이 너와 나의 의리다. 오늘부터 네 아비의 일은 입에 담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세손 정조가 왕위에 오릅니다.
1. 아버지의 역할
아버지는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아들이 더욱 잘 되도록 닦달하고 다그치고 채찍질하면 안 됩니다. 그게 자녀를 더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자녀와의 사이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2. 사람이 먼저다.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도 예법을 너무 강조하면서 사람을 옥죄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 곁에 오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법은 저쪽으로 치워버리고 말이에요.
3. 기대치를 줄이자.
우린 생각보다 기대치가 높습니다. 그래서 늘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끝없이 쏘아대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 서로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기대치를 낮추고 이만큼 하는 것만 해도 고맙고,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잘해도 크게 잘한 것처럼 칭찬을 해 준다면 그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잘하면 뭘 얼마나 더 잘하겠습니까? 높은 곳에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말입니다.